지난주 도쿄에서 열린 한일간 정부부처 과장급 협의 모습을 담은 사진 한 장은 많은 것을 보여준다. 아무리 실무협상이라고는 하지만 명패도 없고 화이트보드에는 "수출관리에 관한 사무적 설명회"라는 종이 한 장만 달랑 붙어 있는 사진은 한일간 현재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의도적 무관심이나 문전박대를 넘어 모욕적으로 보이는 사진을 이해하려면 일본사회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일본에는 '장소의 분위기(場の空氣)' 라는 용어가 있다. 어떤 장소의 상태나 사회적 분위기를 나타내는 말이다. 상호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한 장소에서 대인관계나 사회집단의 상황에 따라서 정서적 관계나 역학관계, 이해관계를 말로 정확히 표현하지 않거나 기피한다. 일본사람들은 분위기를 잘 읽어 내는 것이 곧 일에 '협조'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고 이것이 집단문화로 작동하는 것이 일본사회 특징이다. 따라서 일본사회는 권력과 힘을 가진 사람의 분위기, 의중대로 움직이고, 정치권이나 회사에는 파벌문화가 일반적이다. 정부조직 시스템상 과장급 회의는 무엇을 해결하거나 협상할 권한이 없다. 그저 위에서 내려준 지침을 반복하는 '인간로봇' 역할일 뿐이다.

현재 아베정권의 정치적 뒷배 역할을 하고 있는 우익성향 정치단체 '일본회의(日本會議)'는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로의 헌법개정과 과거사미화를 주장하며 정부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역사교과서 왜곡, 정치인 신사참배, 과거 침략전쟁미화 등의 논리를 개발 이를 보수언론을 통해 사회전체 분위기로 확산시키고 여론을 주도해 가면 다수의 국민은 침묵하며 사회분위기를 따라가는 형국이다.

둘째는 일본은 사전교섭(根回し)문화가 뿌리깊은 나라이다. '네마와시'란 나무를 이식하기 전에 사전에 뿌리정리 등 일련의 작업을 하는 것이지만 이 말은 통상적으로 일처리를 위해 사전에 관계자를 만나 물밑에서 조율하고 협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은 우리처럼 문제나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직설적으로 자기의사를 표현하는 사회문화가 아니다. 현재 일본정부가 밀어붙이는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으로 설사 자기사업이나 회사가 피해를 보더라도 대놓고 정부에 이의를 제기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협회나 조직체를 만들어 그것을 통해 정부나 유력자를 상대로 사전교섭과 협의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경제보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으로나 일본 국내적으로 문제핵심이나 정확한 사실관계를 환기시켜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이다. 그럼에도 조선일보와 같은 보수언론은 일본내 부정적 여론조성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또 하나는 지금까지 한일양국 교섭 시 문제해결의 키를 쥐고 있는 실력자와 물밑접촉을 통해서 문제를 적당히 봉합해 왔지만 이번 만큼은 시간이 걸리고 고통이 있더라도 제대로 된 문제해결과 미래지향적 합의가 필요하다.'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경구처럼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업과 산업구조를 하청 중심 수직적 분업체계에서 벗어나 소재·부품을 생산하는 강소기업 육성을 통한 수평적 협력체계로 환골탈태 해서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전기로 삼아야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필수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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