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싣는 순서|

① 한민족과 디아스포라
② 재일코리언의 역사
③ 재일코리언의 현실 Ⅰ(오사카 코리아타운)
④ 재일코리언의 현실 Ⅱ(교토 우토로마을)
⑤ 재일코리언 마이너리티로서의 정체성
⑥ 차별과 동화 압력을 넘어 미래로
⑦ 다양성과 관용 가치실현을 위한 지역의 과제

 

 

 

 
 

- 한민족과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Diaspora)는 주로 강제이주나 비극적 민족이산의 경험을 지칭하는 말로 많이 사용된다. 원래는 민족분산(民族分散)이나 이산(離散)을 가리키는 말로 팔레스타인 밖에 살면서 유대교적 종교규범과 생활관습을 유지해온 '이산유대인'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유대인 외에도 민족 집단 성원들이 세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는 과정뿐 아니라 흩어진 동족들과 그들이 거주하는 장소와 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하면서 자신이 살던 국가나 거주지를 떠나서 새로운 정착지에 정착하거나 영주하는 민족집단, 커뮤니티(공동체)를 의미한다. 최근에는 초국가주의나 세계화, 다문화주의 처럼 민족의 국제 이주, 망명, 이주노동자, 민족공동체, 문화적 차이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유사용어로 초국가주의는 이주민들이 사회·경제·정치·문화적 연결망을 통해 기원국과 가주국에 모두 연결되는 현상으로 연계성과 동시성을 갖는 흐름을 나타내며 세계화, 다문화주의는 교통과 통신 발달로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면서 사람과 문화가 활발하게 이동하고 교류하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도 다민족 사회로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결혼이주, 외국인 노동자나 불법체류, 난민으로 정착한 외국인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이미 3D산업이나 농어업은 그들의 손이 아니면 유지되기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다. 우리사회로 디아스포라 해온 외국인들은 모두가 경제적 이유 때문만일까? 우리 경제수준이 높아지면서 그럴거란 오해를 많이 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다양한 이유, 어쩔 수 없는 질곡이나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우리 한민족 디아스포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디아스포라 문제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사회적대처가 필요한 이유이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특징
높은 비율과 지정학적 집중성

한민족의 해외거주인구는 2017년 기준 743만명에 이르고 있다. 숫자로는 중국, 이스라엘, 이탈리아, 아르메니아에 이어 세계에서 5번째로 많은 숫자이다. 이 숫자는 본국 거주인구 대비 해외 이주민의 비율이 10%에 이르러 이스라엘, 아르메니아에 이어 세계 3번째로 높은 수치이다. 가히 지구촌 어디에나 한민족이 없는 곳이 없는 상황에 이르러 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특징은 인구대비 매우 높은 비율과 지정학적 집중성을 들 수 있다.

그래프와 같이 전 세계 재외동포 수는 전세계 175개국에 약 743만명(7,430,688명, 2017년 기준)으로 외국국적 동포(64%)와 재외국민(36%)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역별로는 동북아(45%),북미(37%), 유럽(8.5%), 남아시아 태평양권(7.5%), 중남미(1.5%), 중동(0.5%) 순으로 거주하고 있다.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특징은 전 세계 모든 대륙에 분포하지만 특정한 지정학적 위치에 집중해 있다는 점이다.

중국(1위 255만), 미국(2위 249만), 일본(3위 82만)와 CIS 독립국가연합(4위 53만)에 85% 이상이 거주하고 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과거 대립하고 단절되었던 동서진영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는 셈이다.

 
 

- 디아스포라 4개 시기로 구분

한민족 디아스포라의 역사는 한민족의 해외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1860년대 부터 크게 4개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시기는 1860년대~1900년대 초로 토지부족과 인구대비 농업 생산성 저하와 1860년대 기근으로 농민들이 토지를 찾아 연해주, 만주 등지로 본격적인 이주가 시작된 시기이다. 이주한인들은 현지인들의 박해 속에서 입국이 금지된 지역의 농지를 개간하며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다 1875년 봉금령이 해제되자 해란강을 중심으로 한 용정, 훈춘, 연길과 러시아 연해주를 개척해 벼농사를 지으며 한인공동체의 기반을 구축했다. 1902년 부터는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이주가 시작되었다.

둘째 시기는 1910~45년의 시기에는 일제식민통치하에서 토지와 생산수단을 빼앗긴 농민들이 일본과 만주로 이주했고 정치적 이유로 망명해 중국, 미국, 러시아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특히 일본은 괴뢰정부 만주국을 세우고 만주개발을 목적으로 대규모 한인 집단이주를 실시했다. 일본본토에서 1차세계대전 이후 경제호황으로 인한 노동력부족을 메꾸기 위해서 노동자를 모집해갔다. 1937년 이후 중일, 태평양 전쟁시기에는 다수의 한인을 탄광이나 전쟁터로 강제로 끌어갔다. 셋째 시기는 1945년 이후 1962년 이후의 시기는 미군과 결혼한 여성 6000여명과 전쟁 고아 5000여명을 비롯해 과거유럽중심에서 아시아중심으로 변경된 미국이민정책으로 영향으로 미국으로의 이민과 유학이 급증했다.

넷째 시기는 1962년 해외이주법의 제정이후 현재까지는 과거의 난민성격의 이주와는 달리 체계적이고 자발적으로 정착을 위한 이주가 이루어 졌다. 1970년대에는 남미로의 이민과 정착후 연고초청에 의한 이주가 급증하기도 했다.

1970~80년대에는 미국 이민이 급증, 1988년 올림픽을 정점으로 감소하다가 1997년 IMF외환위기와 2008년 외환위기 이후 해외이주가 다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디아스포라 민족이산
동북아 경제공동체 자산

시간과 공간의 압축으로 사람과 경제활동, 문화이동이 활발해지면서 해외동포는 민족의 소중한 자산으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남북한과 중국연변 조선족, 러시아 연해주 고려인, 재일코리언은 동북아 경제공동체 핵심으로 작용할 수 있다. 민족이산으로 흩어졌던 한민족이 역량을 하나로 모아 한국과 재일코리언의 자본과 기술, 북한과 조선족의 풍부한 노동력과 자원이 하나될 때 한민족 경제공동체의 비전을 찾을 수 있다.

한(恨) 맺힌 디아스포라의 불행했던 과거 역사를 딛고 밝은 미래와 희망을 찾을 수 있는 21세기 한민족 새로운 역사의 지평이 열리고 있다.

■ 재외동포란?

'재외동포의 출입국과 법적 지위에 관한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재외국민과 외국국적 동포를 포함하고 있다.

① "재외국민"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외국의 영주권(永住權)을 취득한 자 또는 영주할 목적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을 말하며, ② "외국국적 동포"는 출생에 의하여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사람(대한민국정부 수립 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람 또는 그 사람의 직계비속(直系卑屬)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사람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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