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록(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희생자 추모사업회 회장)

 
 

1946년 11월 11일 해남군의 13개 읍·면에서도 1만3000여명의 농민들이 미군정당국에 추곡공출반대, 친일파와 친일경찰들에 대한 척결, 토지소작농 해결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격렬한 농민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에 미 군정당국은 시위 주동자 600여명을 체포하여 200여명은 즉결처분하고 400여명은 요주의 인물들로 관리하다가 1948년 이승만 정권이 탄생하자 이를 인계하였습니다.

이승만 정권은 국민보도연맹법을 제정하고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교육을 받으면 선처해주겠다는 감언이설로 반강제적으로 입회시켜 관리했습니다. 이후 1950년 6·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7월 초에 아무런 법적 미란다 원칙도 없이 불법체포하여 7월 15일 밤 해창항과 송지 어란항에서 352명을 목선에 태우고 해남·진도·완도의 삼각지점인 절해고도의 갈매기섬에 강제로 끌고가서 전원 총살을 자행하였습니다.

당시는 흰옷을 많이 입었기 때문에 보도연맹원들의 흰옷이 지나가는 선박의 눈에 띄어 세상에 노출될까 두려워 기름을 붓고 시체를 다시 불태우는 2중 살인을 자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당시 끌려갔던 고 박생배 씨(산이면 금호리 출신)에게서 제가 직접 진술받은 전언입니다. 69년 전 정당한 요구를 하다가 6·25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빨갱이로 내몰아 민간인을 학살하고 1992년까지 유가족을 연좌제로 규제하여 인권침해를 자행한 것입니다.

보도연맹 유가족들은 줄기차게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국가배상 등을 요구한 결과 2005년 노무현 정권에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법이 제정 공포되고 전국적으로 일제 신고를 받아 진상이 규명됐으며 법원을 통하여 미흡한 보상이라도 받았습니다.

이에 우리 유가족들이 뜻을 모아 69년 전에 희생당한 영령들의 추모탑을 오는 13일(토) 오후 2시에 해남광장에 건립하오니 꼭 참석하시어 참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13일 오후 1시부터 해남터미널에서 해남군청 버스가 해남광장까지 20분 간격으로 운행됩니다. 군민 여러분들의 많은 참례를 당부드립니다.

끝으로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미신고자 및 미소송자들을 위하여 특별법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심의될 예정입니다. 본 추모비에 희생자님을 각인하고자 하신 유족들은 신청하여 주시면 각인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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