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기(자유기고가)

 
 

대중가요 중 인생을 주제로 한 노랫말이 많다. 그 가운데 최희준이 부른 '하숙생'과 조용필이 부른 '킬리만자로의 표범'이 있다. 하지만 이 두 노래에 담긴 인생의 의미는 사뭇 다르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벌거숭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 정일랑 두지말자 미련일랑 두지말자. 인생은 강물이 흘러가듯 소리 없이 흘러서간다" 하숙생 노랫말 일부이다.

최희준의 하숙생은 인생의 의미를 공수래공수거로 보고 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라고 노래한다. 흐르는 강물 따라 흘러가는 대로 살라 한다. 하숙생은 인생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노래 같기도 하다. 그리고 삶을 달관한 이의 독백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빈손으로 갈 인생 아등바등 살 필요 뭐 있어? 그냥 구름처럼 강물처럼 흐르는 대로 사는 거야' 이런 허무주의적 심리를 노래한 건 아닐까?

최희준의 하숙생은 삶에 지친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노래이다. 치유의 노래이다. 하지만 삶의 실패를 변명한 명분의 노래이기도 하다. 하숙생에는 거친 세상을 헤쳐 나아가라는 희망의 메시지는 없다.

생명 없는 통나무는 흐르는 강물 따라 떠내려가지만, 살아있는 인생은 흐르는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서는 안 된다. 물고기가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 인생도 세상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야 한다. 왜? 살아있기 때문이다.

시인 롱펠로우는 승리하는 인생을 예찬한다.

"우리의 심장 굳세고 어엿하다지만, 소리 죽인 북 마냥 언제고 둥둥거리는 무덤에의 장송행진곡이란다. 세상이라는 넓은 싸움터에서, 인생의 야영지에서 말 못하고 쫒기는 마소가 되지 말고 싸움에서 이기는 영웅이 되라"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내가 산 흔적일랑 남겨둬야지. 불꽃처럼 타올라야지. 이슬처럼 갈순 없잖아" 킬리만자로의 표범의 노랫말 일부이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인생의 공수래공수거를 거부한다. 산 흔적 고고하게 남기고 싶어 한다.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연어의 강력한 생명의 의지가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 죽는 킬리만자로 표범의 고독으로 전율한다. 조용필은 하이에나 같은 인생으로는 살 수 없다고 절규하듯 노래한다. 굶어서 얼어 죽는 산정의 표범으로 그 삶의 흔적을 남기고자한다.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 깨달음을 주는 철학적 메시지가 있다. 표범의 고독한 야망은 물질의 풍요와 세상의 권력과 세속의 명예를 추구하지 않는다. 산 흔적 고고하게 남기고 싶다는 소망은 법정 스님의 무소유 철학과 맥을 같이 한다. 잔잔한 감동의 울림이 있는 스님의 무소유보다 표범의 고독한 소망은 강렬하고 더 처절할 뿐이다.

인생은 죽은 후 저승에서 심판받을 때, 살아생전의 삶의 공과로 심판받는다고 한다. 인생은 결코 빈손으로 저승 가지 않는다. 이승에서의 삶의 보따리 가지고 간다. 그 보따리로 심판받는 것이다.

그러나 저승에서 심판 받는 것보다 더 엄중한 것은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심판 받는다는 사실이다. 하이에나 같은 삶으로 이름을 남길 전두환과 매국노로 역사에 기록된 이완용, 이들은 이미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받았다. 인생은 삶의 흔적을 남기고 그 흔적으로 심판을 받는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았지만, 이 땅의 수많은 어머니 아버지들의 삶의 흔적은 자손들의 가슴에 오랜 그리움으로 기억될 것이다. 후손들의 가슴에 부끄럽지 않는 이름으로 남는 조상들의 삶의 축적이 곧 역사의 발전이다. 인생은 흔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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