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조직에서 질문이 사라지고 있다. 사이버 공간이나 다양한 정보매체에 넘쳐나는 지식들과 질문과 대답, 대화와 토론 더 나아가 논쟁이 사라진 공간에서 당당하게 질문하는 것이 갈수록 어렵고 인색해지고 있다.

단순한 지식과 정보에 대한 특정인 의 독점성이 희박해지고 인공지능(AI)이 활약하는 시대에 접어들면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를 함양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질문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지만 질문이 오히려 줄어들고 하기 어렵게 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알고 싶지 않거나 호기심이 부족해서이다. 배우거나 알고 싶고, 문제를 해결해 내고야 말겠다는 간절함이 부족한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딴청을 부리거나 엎드려서 자거나 수업에 충실하지 않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이나 조직에서 위에서 시키는 것만 수행하는 구성원이 증가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둘째, 몰라서 질문이 없는 경우이다. 질문을 할 만한 기초적인 사실파악이나 학습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엇을 물어보아야 할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이다.

셋째, 이런 질문해도 되나? 이런 질문했다가 나만 무식함이 탄로나 우스워지고 이상한 사람되는 것 아니야? 하는 두려움 때문에 입을 다물고 있는 경우이다. 넷째, 질문하는 것이 학교나 조직의 위계구조 하에서 저항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질문하고 싶어도 입을 닫고 있는 경우이다. 왜? 라는 근원적인 질문은 특히나 그렇다.

다섯째, 질문하고 싶은 것 꼭 물어보고 싶은 것은 있는데 이를 축약해 정확하게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질문하는 방법과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질문이란 할수록 늘어나는 기술이고 질문을 통해 서로간의 의견을 교환하다 보면 추상적이던 개념이나 맥락이 구체화 될 수 있음에도 학교나 조직에서 평소 교육과 훈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여섯째, 자유롭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이다. 질문을 해야 할 대상과 만남의 기회, 질문할 시간적 여유, 질문하기에 적절한 공간 등이 없어 질문할 기회가 원천봉쇄 되는 경우이다.

왜(Why?)라는 질문이 있어야 문제제기나 문제를 인식할 수 있다. 왜? 라는 의문이 없으면 본질적 질문도 없다. 왜라는 질문이 있어야 이에 답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의 "만약 ~게 한다면"이라는 대안이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검토된 가능성이나 대안 중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을 선택해 누가 언제 어떻게 실행해 나갈 것인가? 실행하기 위한 인력, 예산,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라는 과정을 연속적이고 체계적으로 모색해 나가는 것이 문제해결과정이다. 이과저이 없다면 질문하는 사람은 딴지를 걸거나 발목 잡는 사람으로 치부 되기 십상이다.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것도 묻지 않고 위에서 말하는 것을 수첩에 그대로 '받아쓰기'만 하는 학교나 조직은 성장발전하기 어렵다.

질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하게하고 대화, 토론, 논쟁을 가능하게 한다. 자유롭게 "질문있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는 교육현장, 조직, 지역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한다. 왜? 그래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에서부터 시작해 질문이 필요하다. "여기 질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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