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예전에 귀리는 잡초였다. 생육시기가 보리와 비슷한지 보리밭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던. 30년 전쯤에, 어머니는 보름이 막 지나면 두꺼운 보자기로 얼굴을 싸매고 동네 아짐들과 보리밭을 매곤 했다. 보리만 빼고 다 뽑아 버렸다. 그러나 지금 귀리의 위상은 급상승했다. 슈퍼푸드가 되었다. 혈압을 떨어뜨린다거나 하는 효능과 영양소에 대한 분석이 좋기는 하지만 그만한 효능과 영양소를 갖고 있지 않은 곡물과 야채가 얼마나 되겠는가?

귀리가 이렇게 인기 곡물이 된 데는 다이어트 식품이라는 입소문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가끔 들르는 남악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잡초가 아닌 곡물 귀리를 처음 봤고 구입했다. 값도 비싸지 않아 두 통을 사왔다. 귀리가 바닥이 날 무렵에야 집 근처 마트 곡물 판매대에서 볼 수 있었다. 국내산이라 값도 싸지 않았다.

귀리를 세일한다고 알려준 이가 있어 한참동안 발길하지 않은 남악에 들렀다. 마침 날도 더워져 시원하게 마실 미숫가루를 만들 생각에 많이 샀다. 일부를 덜어내 검은콩과 함께 씻어 말렸다. 그런데 미숫가루는 아무 방앗간에서나 다 해주는 게 아니었다. 자주 가는 지인의 가게에 들러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미숫가루에 대한 말을 하니 방앗간을 한 곳 알려주면서 "해남 사람 맞아?"라며 웃음을 띤 채 말한다. 수입산 귀리 사 먹고 장흥 가서 영화 보고 남악에 있는 마트 이용하는 가끔씩 해남이라는 선 밖에 서는 내가 못마땅했나보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엔 상층계급 박 사장의 가족과 하층계급 두 가정이 주인공처럼 나온다. 박 사장 가족이 계획해 놓은 캠핑을 간 날, 주인 없는 집에서 하층의 두 가족이 만나고 비밀의 문이 열리면서 영화가 서스펜스 장르로 변한다. 보는 내내 긴장되고 불안하다. 그 두 가정이 서로 밀어내야 할 타당한 여러 가지 이유를 영화에서는 보여준다.

그런데도 그들과 같은 계급의 선 안에 있는 관객이라 그 사람들이 함께 잘 살 방법을 찾기를 바랐다. 영화에서 선을 그은 것은 박 사장이고 그 선을 넘는 것을 껄끄럽게 여기는 것도 그네들이다. 그래서 사회가 그어 놓은 선 밖에서 더 이상 선을 긋지 않기를 희망했다. 선 밖에 있는 사람끼리 싸우지 않는 반전이 있기를 바랐다.

현실적으로, 해남이라는 선 밖에 서 있는 건 개인만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집 근처 마트에서 파는 국내산 귀리는 500그램에 8600원인데 수입산 6킬로그램과 맞먹는 가격이니 국내산만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농민은 생산한 농산물에 제 값 받고 소비자들은 적정한 가격에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제도적 뒷받침이 있다면 어떨까?

또 장흥으로 영화를 보러 간 것은 해남에는 영화관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째 말만 무성한 해남 작은 영화관이 바로 우리 눈앞의 현실로 모습을 드러내면 될 일이다. 또한 지역 마트나 시장만 이용하지 않는 것은 품목이 다양하지 않아 그런 것이니 거론할 일도 아니다. 살다보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실선이 많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 <기생충>의 기택과 문광의 가족처럼 또 많은 선을 긋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고 하더라고 그 선은 실선이 아니라 점선이기를….

고된 농번기 아침에 마실 귀리 미숫가루 한 잔에 주저리주저리 할 얘기가 많기도 많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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