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정착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타난 첫 직업이 농부이다. 그렇기에 인류 집단생활과 공동생활이 막을 내리지 않는 한 지구상 가장 마지막 까지 남아 있을 직업도 농부일 터이다.

나는 전형적인 농어촌에 살지만 직업이 농부는 아니다. 농사경험이란 작고하신 선친의 '농사를 반드시 지어보아야 한다'는 교육 덕분에 40대 중반에 딱 1년간 함평 신광에서 해 본 1600평 벼농사와 지금의 텃밭농사 경험이 전부이다. 그렇지만 농사가 무엇보다 어렵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체험했기에 쌀 한톨, 밥풀데기 하나라도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게되었다.

소득이 낮고 갈수록 농사환경이 힘들어 지지만 농부라는 직업에 있어 제일 중요한 것은 자율성일터이다. 자율성 확장과 강화에 기반한 자기결정권이야 말로 농부의 자존감이다. 사회적 농업 스터디 모임에서 박사님 한 분이 이것을 단적으로 농부들이 "내가 사장"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중국 안휘(安徽)성 펑양(風陽)현 샤오강(小崗)촌은 중국 개혁개방 초기 농민들에게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준 다바오간(大包干)제도가 최초로 실시된 지역이다. 샤오강(小崗)촌은 대표적인 빈곤지역으로 이렇게는 도저히 살 수 없다는 절박감에서 1978년 11월 중국에서는 처음으로 국가소유 집단농토를 쪼개 18개 농가에 나눠주는 비밀계약이 체결된 곳이다. "밭을 각 농가에 떼어주고 정부에 돈이나 양곡을 구하지 않으며 만약 이번 회의의 결정으로 간부가 감옥에 갈 경우 그들 자녀를 18살까지 부양해준다"는 내용의 연판장에 목숨을 걸고 서명했다.

다바오간 제도는 일정 생산량을 국가에 상납한 뒤 나머지는 개인이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한 농업생산 청부제를 의미한다. 이제도가 도입되면서 다음해에 5년간 생산량에 맞먹는 어마어마한 양을 수확했다. 개인의 자율성과 성취동기가 중요하다는 것이 실증되었고 이것이 오늘날 중국을 세계 경제대국으로 탈바꿈시켜 놓은 나비의 날갯짓이 되었다.

둘째, 농사를 짓는 농부는 '내 논', '내 밭'이라는 생산수단, 생산자원을 기반으로 애착심을 가지고 멋진 농장과 자기만의 비법과 재배법으로 농산물을 생산해 낸다. 이것을 자기만이 아닌 후대를 위해 계획하고 보전해나가는 농촌 어르신들은 장인의 기예(技藝)를 지닌 전문가이고 예술가이다.

12년 전 일본 히로시마 산골 농촌마을에서 5일간 머무른 적 있었는데 농촌 어르신들마다 자기논 논두렁을 얼마나 정성들여 예쁘게 다듬어 놓았는지 여름날 농촌풍경, 논두렁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같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논두렁에 그렇게 애정을 쏟는데 논밭 작물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터이다.

국가 농업정책이 기업농, 경영농, 첨단농업과 효율성 위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농업을 효율성으로만 따진다면야 규모화와 기계화가 주된 처방이고 효율성 제고가 능사일 터이다.

농업은 생명산업이자 국가 기간산업이라는 측면에서 농업은 자본의 이윤추구 대상이 아닌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농부의 자율성과 백인백색(百人百色)인 농사 기술과 비법인 기예를 살리고 지켜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해남푸드플랜 역시 지역농부들 자존심과 기예를 존중 발전시키고 펼치는 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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