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거리, 직선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가로막는 것을 뚫거나 밀어버려 목표만을 앞세운다는 점에서 도로는 직선을 지향하며 태생부터 폭력성을 내포하고 있다.

도로와 달리 길은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고 급경사지를 만나면 옆걸음 갈지자를 써가며 멀리라도 돌아서 가는 공생지향의 소통로다. 무너버린 시뻘건 산허리, 갈라버린 마을과 사람들의 삶, 파괴된 자연을 볼 때 마다 마음이 불편한 건 폭력과 일방희생의 적나라함, 현장의 생생함 때문이다.

광주 완도간 고속도로가 건설된다는 말은 나온 지가 오래 되었다. 이미 성전에서 나주 혁신도시를 거치는 구간은 예산까지 반영돼 공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 구간의 건설만으로 해남에서 광주까지는 이십여분 시간이 단축된다고 한다. 남창에서 북일을 거쳐 옥천을 지나 성전에 이르는 전 구간 도로가 뚫리면 완도사람들 광주 가는 길은 많이 가까워질 것이다.

'빨리빨리'의 세태 때문일까. 거리가 가까워져 시간이 절약된다는 한 마디 앞에 사람들은 이견을 내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어마어마한 국토의 변형과 환경파괴 사회경제적 지형의 폭력적 변화를 수반하는 도로의 일방적 건설을 돌아볼 일이다. 도로는 편리의 면에서 좋은 것이지만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는 일이고, 새로 더해지는 도로만큼 국토의 가용면적은 줄어들고, 공사 과정과 도로의 건설로 인한 환경파괴와 풍광의 훼손을 피할 수 없다.

도로의 건설로 발생하는 편리를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시골 사람들의 편리증진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도로건설로 인한 이득의 일차적 수혜자는 토건권력, 자동차회사 쪽 일 것이며 경제적 이득은 시골-지방에서 도시-중앙 쪽으로 흘러나간다. 서울 부산간 최초로 KTX 열차가 신설된 후로 부산에선 두 개의 백화점과 한 개의 은행이 쓰러졌다. 부산 사람들이 서울 가기가 그만큼 편리해졌는데 결과는 지방이 더 말라가는 것이다. 길이 편리해진 만큼 서울 사람들은 시골에 와서 자고 갈 일도 돈 쓰고 갈 일도 줄어드니 지역소득의 감소로 이어진다.

광주-완도간 고속도로는 해남읍을 거치지 않고 남창 북일 옥천을 거쳐 간다는 점에 해남의 심각성이 있다. 완도 사람들은 왠만해선 해남 들를 일도 없어질 것이다. 해남경제의 주름살은 더 늘어날 것이고 광주만 좋을 일이다.

해남의 미래산업이라고 할 관광의 추이는 바뀌어가고 있다. 건물 세우고 도로 뚫고 콘크리트 바르던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깨끗하고 훼손 없는 자연환경과 아름다운 풍광을 찾아서 사람들은 오는 것이고 더 불편하고 더 가난한 오지를 찾아가는 이들도 많다. 관광의 추이가 변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미적 기준이 변한다는 것인데 풍광과 자연을 헤치는 큰 토목공사는 해남의 앞날을 생각할 때 재앙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완도군민의 이해관계는 또 다를 수 있지만 해남사람들에겐 아무런 실익이 없이 경제적 축소가 눈에 훤히 보이는 고속도로의 건설에 대해 해남사람들의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해남사람들의 일 아니라는 듯 손 놓고 있지만 이건 해남땅을 파괴하는 문제이고 해남경제를 피폐화시키는 일인데 우리의 일이 아니라면 누구의 일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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