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이주여성 윤은혜 씨
뇌종양으로 시각장애 얻어

▲ 윤은혜 씨는 뇌종양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지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점자책을 읽는 윤 씨의 모습.
▲ 윤은혜 씨는 뇌종양으로 인해 시력을 잃었지만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점자책을 읽는 윤 씨의 모습.

밝고 명랑한 웃음이 매력적인 윤은혜(47) 씨는 빛조차 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시력을 잃은 시각장애인이다. 후천적으로 시력을 잃어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윤 씨. 지금은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윤 씨는 필리핀이 고향이다. 12남매의 10째 딸로 태어났고, 필리핀에서 속기 관련 전공으로 대학까지 다녔다. 공공기관에 계약직으로 근무했던 윤 씨는 29살이 되자 결혼을 하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 지난 2002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하면서 해남으로 오게 됐다.

당시 윤 씨는 한국어를 몰랐고 남편은 영어를 하지 못하다 보니 소통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고 한다. 지난 2003년에는 소중한 딸을 낳았고 한국에 적응하기 위해 면사무소에서 연계한 한글 교육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그녀의 시야에 변화가 찾아왔다. 머리는 전혀 아프지 않았는데 사람이 두 명으로 보인다던지, 어디가 바닥인지 구분할 수 없다던지 등 이상 징후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해남의 안과에 찾아가자 눈에는 이상이 없으니 큰 병원에 가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곧바로 화순 전남대병원을 찾아가 검사를 진행했고, 뇌종양을 발견해 수술대에 올랐다.

첫 수술을 무사히 마쳤지만 경과가 좋지 않았다. 뇌혈관에 피가 고여 있어 재수술을 해야만 했다. 두 번째 수술을 마친 이후 윤 씨의 삶은 완전히 변해버렸다. 딸과 남편의 얼굴도, 창 밖의 하늘도 보이지 않았다. 시력을 잃고 후천적 시각 장애를 얻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세상을 볼 수 없게 되자 마음에도 캄캄한 어둠이 드리웠다. 설상가상으로 윤 씨의 소식을 전해들은 친정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졌고 다신 일어나지 못했다.

약을 먹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까지 생각했지만 그 때마다 윤 씨를 붙잡아준 것은 '엄마'라는 단어였다.

윤 씨는 "나쁜 생각을 할 때마다 딸이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항상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죠. 아이를 생각하며 버텼어요"라며 "남편과 시어머니도 우리가 옆에 있으니 울지 말라고 했어요. 필리핀에 보내버릴까봐 무서웠는데 절대 안 보낼거라고 하더라구요. 그때부터 마음을 고쳐먹었어요"라고 말했다.

지금은 시각장애인연합회 해남지회 교육에 참여하며 다양한 도전을 하고 있다. 점자도 익히고, 지난해부터는 컴퓨터도 배우는 중이다. 내년에는 영암 은광학교에 입학해 2년간 학생이 될 계획인데, 앞으로 안마사 교육을 받아 활동하고 싶다는 목표도 세웠다.

윤 씨와 5년 째 함께 움직이는 박규촌(65) 활동지원사는 "은혜 씨는 점자도 빨리 익히고, 컴퓨터도 몇 년 배운 사람보다 훨씬 잘 해요. 다른 결혼이주여성들을 위한 디딤돌이 될 수 있는 사람인데 신체적으로 제약이 있다보니 안타깝죠. 그래도 늘 밝고 착하게 살아요"라고 설명했다.

윤 씨는 "어떤 사람은 '눈이 안보이는데 어떻게 돌아다니냐, 가만히 있어'라고 말해요. 그런 말 들으면 마음이 아프죠. 저도 하고 싶은게 있는, 한 명의 사람이니까요"라며 "이젠 슬퍼하지 말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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