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지 서정마을 문해교실
하루도 안 빠지고 참석

▲ 송지면 서정마을회관에서 늦깎이 학생으로 변신한 할머니들의 즐거운 한글교실이 진행됐다.
▲ 송지면 서정마을회관에서 늦깎이 학생으로 변신한 할머니들의 즐거운 한글교실이 진행됐다.

송지면 서정마을에서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이 되면 12명의 할머니들이 연필을 잡고 만학도로 변신한다. 교육 시기를 놓쳐 글을 배우지 못한 채 오랜 세월 살아오다가 문해교실을 통해 뒤늦게 배움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가장 젊다는 막내 할머니가 73세, 최고령 할머니는 90세인 만학도들은 지난 1월과 2월 송지면사무소의 소개로 평생학습관 늘찬배달 사업 한글교실을 신청하면서 늦깎이 학생이 됐다.

수업에는 70대 2명, 80대 9명, 90대 1명이 참여하고 있으며,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10년간 한국어강사로 활동한 김미향 씨를 강사로 초청해 모음·자음과 같은 기초적인 한글 교육부터 배워나갔다.

조금 더디지만 꾸준히 글자를 깨쳐가는 즐거움에 푹 빠진 할머니들은 두 달간의 늘찬배달 사업이 끝난 이후에도 공부를 더 하고 싶어 했고, 아쉬워하는 할머니들을 위해 평생학습관에서는 2019년 문해교육 '꿈을 보며 배우는 교실'의 일환으로 찾아가는 한글교실을 마련했다.

기존에는 평생학습관 건물에서 문해교실을 운영해왔는데, 면 지역의 어르신들을 위해 학습자들의 자택이나 마을회관으로 찾아가는 방문형 문해교실을 신규 개설한 것이다.

문해교실은 오는 12월까지 35주 동안 매주 2회 2시간씩 진행된다. 서정마을 이외에도 해남읍과 황산·산이·문내·화원면에서 모두 12개 반이 운영되고 있다.

서정마을 할머니들은 수업 진도를 놓치지 않기 위해 열 일 제쳐놓고 수업에 참여할 정도로 열정이 남다르다. 한 번이라도 수업을 듣지 못하면 다른 할머니들보다 진도가 뒤쳐질까봐 빠질 수 없다는 것이다. 수업이 오전 10시부터 진행되는데도 2시간 전부터 회관에 모여 삼삼오오 예습과 복습을 진행할 정도다.

최병애(75) 할머니는 "논밭일에 나무도 해오면서 크느라 학교가 뭔지도 몰라서 안 갔죠. 그런데 어디 가서 간판을 보더라도 잘 모르고 은행같은 곳에 가면 주소를 못 쓰니까 불편했어요"라며 "글자 배우니 훨씬 좋죠. 낮엔 일하고 저녁엔 숙제해요. 배우는 재미로 합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7일 열린 문해교육에서 할머니들은 서투르지만 또박또박 글자를 적으며 단어를 소리내어 읽고 글자를 조합했다. 가끔은 틀릴 때도 있지만 하하호호 웃으며 수업에 임한다.

김 강사가 '너'로 시작하는 단어를 말해보자고 하자 '너구리'를 외치며 '옥수수 깎아 묵는 놈! 이놈땜시 뭐를 못심는당께'라는 농담을 곁들이고 깔깔 웃으며 즐겁게 배워나간다.

할머니들은 글자를 배우기 전에는 이름 석 자, 주소 한 줄 쓰기도 버거워 쩔쩔맸지만 이제는 자신있게 적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배움의 끈을 이어가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특히 가족들도 그녀들의 배움을 응원하고 있어 더욱 든든하다고 한다.

정상엽(90) 할머니는 "나 어릴 때 여자들은 집에 돈이 있건 없건 거의 공부를 안 시켰제. 배움이 모지래서 언제 연필 잡아본지도 몰러. 그란디 여기 나와서 글자도 써보고 한께 오죽 기쁘것소"라며 "낼 모레가 백살인디 뭐 하고잡아서 배우는건 아니여. 친구들도 만난께 재밌고 그냥 배우는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 하루라도 빠지기 싫어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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