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 기고
명량대첩 일등공로자 '어란'은 자랑스러운 해남인박옥임(순천대 명예교수)
해남신문  |  hnews@hnew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9.05.10  10:33:08
페이스북 트위터 밴드 구글
   
 

우리나라는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1592년-1598년)동안 왜적의 침략으로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입었다. 그 때 목숨을 던져 나라를 지켜낸 대표적인 호국여성 세 분이 있다. 진주의 논개와 평양의 계월향과 해남의 '어란'이다.

진주 논개를 기리기 위해 의암사적비(義庵事蹟碑)도 건립되었고 사당인 의기사(義妓詞)에 배향하고 있으며, 평양의 계월향은 장향각(藏香閣)에 영정은 물론 의열사(義烈祠)에 배향하여 기리고 있다. 물론 이 두 분은 영정이나 추모하는 헌시와 여러 소설이나 영화 등으로 널리 알려 회자되고 있다. 그러나 해남의 호국여성 '어란'은 명량대첩이라는 전쟁 자체를 승리로 이끄는데 결정적인 공로자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 반열에 오르지 못해 매우 안타깝다.

1597년 칠천량 해전에서 원균이 참패하고 사망하자 조정에서는 이순신 장군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그렇지만 겨우 12척의 배로 어떻게 승승장구하는 왜적을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나라의 흥망이 갈리는 일촉즉발의 결전을 눈앞에 둔 시점에 죽음의 공포로 불안에 떨며 땅에 떨어진 수군의 사기로 기세등등한 왜적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단 말인가. 이순신 장군은 이곳이야 말로 최대의 격전지이자 승부처라고 여겼다. 모두 죽기를 각오해야만 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호국여성 '어란'으로부터 왜적의 군사기밀과 출전계획이 전해졌다.

명량대첩은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전략이 가장 큰 승리의 요인이었음은 틀림없다. 그렇지만 전쟁을 수행하는데 적군의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활용하는 것은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명량대첩에서 왜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어란'이 제공한 정보가 결정적으로 작용하였다.

호국여성 '어란'은 이순신 장군의 승전보를 듣고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마쳤다고 판단하고 절벽에서 바다로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다. 다음 날 한 어부가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명량해협을 바라보는 소나무 옆에 묻어주었다. 이후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여낭(여자 여(女)와 떨어질 락(落)이 여낭으로 됨)터라 부르고 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어란'의 묘 근처에 자그마한 당집에 '어란'을 신주(神主)로 42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을 당제를 지내고 있다. 목숨 바쳐 나라와 백성을 구한 호국여성 '어란'은 진정으로 주민들의 삶에 생생하게 자리하고 살아있다.

이 의로운 정신과 공적을 적어도 논개 수준의 격에 합당한 예우와 현창을 지방정부는 물론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할 일이다.

해남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가장 많이 본 뉴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전남 해남군 해남읍 홍교로54 3층 해남신문사 / TEL : 061-534-9171~5 / FAX : 061-534-9176
신문등록번호 : 전남-다-00004 | 대표이사·발행인·편집인 : 민인기 | 청소년보호책임자 : 민인기
Copyright © 해남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to : hnews@hnews.co.kr
해남신문의 기사 등 모든 컨텐츠에 대한 무단 전재·복사·배포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