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해남문화원 이사)

 
 

역사의 연대표를 보면 삼국시대는 기원전 37년에서 668년 사이를 말한다. 그중 백제는 기원전 18년에서 660년 사이를 말하고 있다. 고구려는 BC 37년~668년, 신라는 BC 57년~935년, 가야는 AD 42년~562년 동안이다. 우리지역은 마한에서 백제로 다음은 통일신라로 이어진다.

백제의 자연적 위치는 한강유역을 비롯한 경기도, 황해도 동남부, 충청도, 영서 일부, 전라도 일대로 해남군의 면적은 1000㎢로 이 지역에 약 2%를 차지하고 있다. 정확성에 대한 논란이 있으나 고구려, 백제, 신라로 나뉜 삼국시대에는 잦은 전쟁과 백성들이 병역기피나 조공(租貢)부역을 포탈하기 위하여 신고를 허위로 한 일이 많았으며, 당시의 인구수 파악은 어려웠다고 본다.

'삼국유사'(고려시대 승려 일연(1206~1289년)이 쓴 삼국시대 관련 역사책)에 따르면 5~6세기 우리나라 영토에 살던 인구수는 고구려 69만호·백제 76만호·신라 17만호 등을 감안할 때 총 162만호로 380만명 정도로 1호당 2.4명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삼국사기' 6권 문무왕 6년에는 신라에 투항한 고구려인의 집단이 763호로 모두 3543명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고구려의 경우 1호당 평균 호수는 4.6명이 된다. 이와 다른 문헌인 일본 도다이사[東大寺]의 쇼소원에서 발견된 8세기 중엽 신라시대의 4개 촌락의 촌적부에 관한 인구통계학적 분석은 4개 촌락의 호수는 모두 43호에 지나지 않으며, 기록상의 총 인구수도 442명으로, 이 기록에 의한 호당인구는 10.3명으로 나타났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도 인구의 차이가 있으나 삼국유사에 의한 해남군의 인구수를 유추한다면 백제시대의 인구수는 178만6000명이다.

해남군의 경우 토지 면적당 안분 계산하면 당시의 인구수는 3만5000명이고, 세대수는 3만2000세대이다. 이는 현재 해남인구의 절반 수준이다. 삼국사기에 의한 계산을 하면 2배로 현재의 인구수와 같다고 보는데, 이는 우리의 현실과 맞지 않다고 본다.

근대화 이전인 1500여년 전 삼국시대에는 빈약한 위생시설과 건강관리의 소홀로 출생시 평균기대수명이 25~30세로 매우 낮았으며, 신생아의 20%는 출생 후 1년 이내에, 30% 정도는 5세 미만에 사망했다. 백제의 연평균 자연인구증가율은 0.0518% 정도인데, 이 성장률은 서기 이후 17세기 중엽 세계인구의 연평균 증가율인 0.04∼0.05%의 수준과 비슷하여 그 타당성이 높다.

현재 해남인구의 지난 10년간 연평균 감소율은 1.1%로 앞으로 이런 추세라면, 45년이 지나면 백제시대의 인구와 같은 것으로 판단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현재의 절반 정도에 인구감소는 더 빨리 올 것으로 보는 것은 해남인구가 제일 많이 감소 한 해는 1969년 23만3803명에서 1970년 21만4459명으로 1만9344명인 약 8% 감소하는 해도 있었다.

미래에 기후변화는 예상을 뛰어 넘는 인구감소를 가져올 수 있다. 필자가 백세까지 산다면 이때 해남인구가 백제시대의 인구가 같은 시대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한편 백제시대의 언어는 고대 한국어를 사용하였고, 이때 행정구역의 새금현은 지금의 현산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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