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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애 성도… 내 것 하나 없이 오직 아이들에게 헌신한 삶해남등대원 조성애 성도 별세
결혼도 하지 않고 54년간 헌신
박수은 기자  |  pse@h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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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03  15: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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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을 해남등대원 아이들에게 헌신한 고 조성애 성도가 별세했다. 사진은 지난 2001년 등대원 잔디밭에 앉아 있는 모습.
   
▲ 아이들과 식사하는 모습.
   
▲ 음식 재료를 손질하는 모습.
   
▲ 지난 1996년 등대원 설립자 고 이준묵 목사<왼쪽>와 찍은 사진.

54년간 해남등대원 아이들의 어머니이자 고향이 되어주었던 고 조성애 성도가 지난달 25일 향년 89세로 별세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반세기 동안 묵묵히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온 고귀한 삶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군민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고 있다.

고 조성애 성도는 지난 1930년 해남읍 연동리에서 고 조실용·최윤심 씨 부부의 2남3녀 중 넷째로 태어났고 1951년 목포 성경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2년 뒤인 지난 1953년 3월 6일 고 이준묵 해남읍교회 담임목사가 고아들을 보살피기 위해 해남등대원을 개원했고, 조 성도는 개원과 동시에 자신의 삶 모든 것을 내놓았다. 평생 결혼도 하지 않고 등대원 아이들을 돌볼 것을 서약했다는 것이다.

당시 등대원과 같은 복지 시설에는 정부 지원금이 내려오지 않아 밭일과 날품을 팔며 아이들을 돌봐야 했다. 조 성도는 궂은 밭일은 물론 매일 삼시 세끼마다 100여명분의 음식을 준비하고, 때로는 아이들의 보호자로 학교에 나갔으며, 넉넉지 못한 살림에 새 옷을 마련할 수 없어 아이들의 헤진 옷을 기우는 등 살림을 도맡아 했다.

쉼 없이 아이들을 돌보는 데에만 매진한 그녀의 옷은 항상 헌옷이었다. 후원으로 들어온 낡은 옷, 누군가 입지 않아 밖에 내놓은 헌옷을 직접 수선해 입었다. 밝은 계열의 소박한 상의와 품이 넉넉한 고무줄바지, 그리고 고무신. 교회에 나갈 때에만 단정한 무채색 한복을 입었다. 해남등대원을 퇴소한 사회생들이 좋은 옷을 선물해도 입지 않았다. 간직하고 있다가 형편이 어려워 도움을 청하고자 등대원을 찾은 사회생들에게 내어줬다. 옷뿐만 아니라 일하면서 모은 돈도 빌려줬다. 돌려받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오죽 힘들면 찾아왔겠느냐며 선뜻 내줬다고 한다.

또한 조 성도가 환갑을 맞이했을 때 사회생들이 환갑잔치를 마련하겠다고 하자 10여일간 홀연히 사라졌다. 칠순잔치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조용히 돌아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했다는 것이다. 어디에 갔다 왔냐는 물음에도 빙긋이 웃을 뿐 대답을 해주지 않아 지금도 그녀가 어디로 사라졌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오로지 자신을 위한 시간을 거부하고 한결같이 갈 곳 잃은 아이들을 위해서만 존재했던 삶이었다.

조 성도의 자애로운 모습을 알리고자 했던 사회생들의 제보로 지난 1975년 아동복지사업부분 보건사회부장관상을 수상했고, 1992년에는 어린이날표창 보건사회부장관상을 받았다. 지난 1995년에는 MBC 신인간시대에 '사연있는 두사람 이모님의 못다한 사랑'이라는 다큐멘터리에 실리면서 좋은한국인 대상을 수상했다. 수상식에도 직접 나가지 않고 언니에게 부탁해 상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을 드러내길 한사코 거절하던 그녀가 상을 받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상금을 아이들을 위해 사용하고자 한 것이다. 좋은한국인 대상을 수상했을 때에는 상금 2000만원을 받았는데, 세금을 떼고 들어온 1400여만원을 등대원 시설공사비로 통장째 내놓았다.

조 성도는 지난 2006년 12월 31일 75세의 나이로 54년간 일 해온 등대원에서 물러났다. 현장은 떠났지만 마음의 끈은 계속 이어져 있었다.

그러나 점차 노환으로 몸이 약해지면서 지난달 25일 오전 7시 30분께 소천했다. 장례식장에는 슬픔에 잠긴 해남등대원 관계자와 아이들은 물론 전국 각지 사회생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눈물바다를 이뤘고, 장지로 운구 중 평생을 몸담은 등대원에 들러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해남등대원 박자원 원장은 "조 성도님은 자신의 것을 단 한 가지도 소유하지 않았던 분이다. 일부를 주는 것도 망설이게 되는데 조성애 성도님은 망설임 없이 전부를 다 내어주셨다. 조금만 자신을 위한 삶도 사셨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들 정도다"며 "성도로서 빛과 소금으로 녹아 없어지시길 바랐던 분이기에 집사도 장로도 마다하셨다. 이 분의 헌신적인 삶을 많은 이들이 기억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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