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해남현감 지내며 인연
3대 선영과 공적비 등 둘러봐

▲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난 17일 해남현감을 지내고 옥천면에 묻힌 증조부 묘를 찾았다.
▲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난 17일 해남현감을 지내고 옥천면에 묻힌 증조부 묘를 찾았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지난 17일 해남을 방문해 선조들의 묘와 집터, 공적비 등을 둘러봤다. 해남에는 도올 선생의 고조부모부터 증조부, 조부모까지 3대의 선영이 모셔져 있다 보니 도올 선생은 "해남은 내 본 뿌리다"고 강조했다.

도올 선생은 지난 17일 오전 옥천면 학동마을에 위치한 증조부(김중현)의 묘를 찾았다. 김중현은 임오군란 당시 불타는 궁정에서 맨몸으로 명성황후를 업고 탈출시킨 인물이다. 김중현은 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올라가 홀어머니를 봉양하며 어렵게 살았다. 그의 직업은 유기그릇을 만드는 공방에서 잡일을 돕는 잡부였다가 궁궐을 수비하는 군졸이 되었고 명성황후를 살린 인연으로 하루아침에 신분상승을 하게 된 인물이다.

이 같은 공로로 김중현은 1886년 종 6품에 올라 해남현감에 부임하게 됐다. 해남현감 재직 시설 해남윤씨 가와의 친분으로 지금의 연동 녹우당 전시관 자리에 집을 짓고 기거했으며 해남현감에 재직는 동안 충북에 있던 부친인 묘를 북평면 남창리 인근 명당자리를 찾아 이장해 오기도 했다. 이후 풍천부사, 전라우도 수군절도사까지 오르며 1898년에는 종2품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했다. 김중현은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으며 품바타령을 부르는 걸인들까지도 인간적으로 대해 그의 장례식에는 품바들의 만장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현재 현산 월송과 해남읍 서림리, 문내면 동외리에는 그를 기린 공적비가 남아있다.

김중현은 해남읍 연동에 기거하면서 아들 김영학을 해남윤씨 가의 딸과 결혼시켰으며 아들인 김영학은 동복군수를 지냈다. 김영학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 김지수가 도올 김용옥 선생의 부친이다. 김지수는 신학문을 추구했기에 일찌감치 해남을 떠난 인물이고 이로 인해 김중현으로부터 시작된 이 집안과 해남과의 인연은 막을 내린다. 하지만 도올 선생은 해남은 자신의 본 뿌리라고 밝히며 해남과의 인연을 다시 이어가고 있다.

이날 도올 선생은 "부친이 천안에서 병원을 개원하면서 나는 천안에서 태어났지만 나의 본 뿌리는 해남이다"며 "고조부부터 할아버지까지 묘소가 해남에 다 있어 해남에 오면 나의 뿌리를 느낄 수 있고 나는 해남의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다"고 말했다. 이어 "해남의 산하만 봐도 아늑한 향수를 느끼고 눈물이 나와 감회가 새롭다"고 덧붙였다.

도울 선생은 이날 증조부 묘에 이어 계곡에 있는 조부 집터와 조부집, 옥천에 있는 조부모 묘, 화산에 있는 증조모 묘, 월송에 있는 증조부 공적비, 북평에 있는 고조부 묘, 연동에 있는 증조부 거주지, 문내에 있는 증조부 공적비 등을 두루 둘러봤다.

한편 지난 2006년 당시에도 해남을 찾았던 도올 선생은 해남에 서원을 지어 후학을 양성하고 선조들의 뜻을 잇는 새로운 학문을 발흥시켜보고자 도올학당을 열고 싶다는 뜻을 밝혀 해남군이 검토했었지만 운영계획과 국비 확보 등의 어려움으로 사실상 무산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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