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 중국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작고 약한 나라가 크고 강한 나라를 섬기는 조공(朝貢)과 책봉(冊封)으로 대표되는 '사대'(事大)와 함께 이웃나라(왜·여진 등)와는 교류하는 '교린(交隣)'이 대외정책이었다. 이것이 생존방식 이었고 이것을 지혜롭게 해냈을 때 나라가 융성했지만, 지는 해 명나라를 숭배하며 의리를 지키고자 했던 것처럼 국제정세를 잘못 판단했을 때 국가존립이 위협받았고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강대국은 받들어 섬기는 주체성없는 태도'를 가리키는 사대주의(事大主義)가 분명히 우리 역사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직 이것만으로 우리 역사를 해석하고 적용하려 는 것은 중국중심에서 세상이 이제는 개벽했으니 일본을 섬기라며 강요했던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도 없지않다.

21세기에 들어서도 미국과 중국, 그리고 인정하기는 싫지만 일본 눈치를 보아야 하는 우리로서는 사대의 처세술을 익히고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맹자 양혜왕 편에서는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이웃 나라와 교류하는데 도가 있습니까?" 라고 묻는 물음에 맹자는 "있다"면서 두 가지를 들어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첫째, 오직 어진사람(仁者)만이 나라가 크더라도 작은 나라를 섬길 수 있다. 큰 나라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작은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자이다. 하늘의 이치를 즐기는 사람은 천하를 보전하게 된다.

둘째, 오직 지혜로운 자(智者)만이 능히 작은 나라로 큰 나라를 섬길 수 있다.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를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치를 두려워하는 사람이다. 하늘의 이치를 두려워하는 자는 그 나라를 보전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첫 번째 경우는 미국처럼 힘센 나라가 예와 어짐으로 작은 나라와 교류하는 것은 사소(事小)이다. 그리하면 모두가 평화로울 터이지만, 날이 갈수록 미국의 이미지는 힘을 앞세워 억지를 부리고 자기 몫을 챙기는 깡패로 바뀌어 가고 있다. 결국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천하를 머지않아 잃기 십상이다.

두 번째 경우는 지혜로 큰 나라와 교류하는 방법이 사대(事大)이다. 분하다고 약한 자가 강한 자에게 무턱대고 달려드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맹자는 오직 지혜로운 자만 능히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섬길 수 있다고 하였다.

사대와 사대주의는 엄연히 다르다. 사대주의는 자신의 영향력이나 역량을 스스로 축소한다. 자신의 운명을 자기스스로 개척해 나가기 보다는 남에게 의존한다. 그러나 보면 큰 국가를 섬기지 않으면 망할 것 같은 자기불안에 빠지게 되고, 나보다는 남을 더 사랑하는 몰자아의 기형적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우리는 한민족의 역사를 사대주의 시각이 아닌 위기와 환란의 지난한 역사 속에서도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고 극복해온 사대로 바라보아야 한다. 이웃나라와 외교에 있어서 그 나라가 크던 작던 어짊과 지혜로 이들과 교류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맹자의 가르침이며 사대는 나라를 팔아먹는 사상이 아닌 지혜로운 자의 처신인 셈이다.

우리로서는 변화된 시대와 국제관계에 맞추어 현실적인 외교정책 '새로운 사대(新事大)'를 어떻게 해야 나가야 할지 지혜롭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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