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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이 해남에서 행복하게 살면황은희(주부)
해남신문  |  kssjm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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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12  15:0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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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자 해남신문에 실린 해남군의회가 벌인 해프닝에 대한 기사를 보니 곧 큰돈 들인 새로운 마을이 만들어지려나 보다.

한번 들어오면 나갈 길을 찾지 못해 주저앉을 것 같은 산골오지로 시집을 왔다. 30가구가 될까 말까한 동네 사람들이 신기저수지가 멀리 보이는 산 아래에 옹기종기 모여 사는 마을이었다. 1899년생인 시할머니가 당신의 시어머니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으니 동네가 생긴 지는 꽤 오래인 것 같았다. 그리고 더 오래전에는 50가구도 넘게 살던 큰 동네였다.

장이라도 가려면 삼사십분을 걸어 나가야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산정장이 열리는 날이면 아짐과 형님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잰걸음으로 재를 넘는 걸 담장 너머로 볼 수 있었다. 점심 무렵에 장거리를 이고지고 돌아온 어머니는 짐을 내려놓자마자 여름이면 땀에 젖어 냉수를 들이켜고 겨울이면 꽁꽁 언 손을 아랫목에 넣어 녹여야 했다.

윗집 은순네 아재는 소에 쟁기를 채워 논갈이를 한 후에 써레질을 하고 그보다 훨씬 젊은 남편은 경운기로 로타리를 쳤다. 모내기가 끝나면 어머니는 허벅지까지 올라오는 노란색 물장화를 신고 뜨거운 햇빛 아래 허리 숙여 물 찬 논을 걸어 다니며 품앗이꾼들과 가종이라 불리던 보식을 했다. 논이 노랗게 변하면 추수를 했다. 꼭두새벽에 아침밥을 먹고 아버지가 갈아놓은 낫을 챙겨들고 논에 들어가면 능력대로 영역이 할당되면 벼를 베기 시작한다. 낫질이 서툴러 두 줄을 잡고 가도 뒤처지는 나를 어머니가 마중 온다. 일요일이면 중고등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생들까지도 논에 엎드려 낫질을 했다.

20년 전에 버스가 하루에 세 번 들어갔다 나오는 문명의 혜택을 보기 시작했을 때만해도 버스 승강장에 모인 장꾼들의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병원에 가는 노인만 말 없이 앉아있다.

지금은 트랙터로 비료까지 뿌려 논을 간다. 가을이 되면 6조식 콤바인으로 수확을 한다. 농사구조가 많은 사람이 필요 없게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도 남편이 총동원령을 내리는 때가 있다.

모판을 할 때다. 손을 맞춰야 효율적이기 때문에 최소 8명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네엔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으니 주말에 맞춰 날을 잡았다. 지금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채운다. 지금 우리 시댁 동네는 20가구가 될까 말까 하다. 더군다나 대부분 1인 가구에 보조기 없으면 마실조차 갈 수 없다. 농촌 대부분의 마을은 빈 집이 늘어나고 사람들은 나이 들어 85세의 노인들을 75세의 젊은 노인들이 봉양하고 있다. 시아버지는 농사짓고 살려한 우리 부부의 농촌살이를 거세게 반대했다. 집안이 편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이엠에프가 터졌을 때 평생 실업자가 되지 않을 직업을 선택했다며 자조적 쓴웃음으로 체념했다.

그때는 너무 젊어서 몰랐다. 농촌을 떠나라 등 떠민 이유가 시아버지의 나이가 되니 저절로 더 뚜렷하게 와 닿는다. 문화적 불균등, 교육 서비스의 불균등, 의료서비스의 불균등, 불균등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도 그렇겠지만 무엇보다도 소득의 불균등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이 그 이유였음을.

지난 화요일 남편이 태풍보다 더 거센 바람을 뚫고 집으로 돌아와 그 다음 날 버섯사의 안녕을 기원하며 일터로 떠났다. 농업 농촌의 공익적 기능 및 가치를 크게 실현하고 있는 농군, 해남에서 농민으로 행복하게 살도록 하는 게 더 타당성 있지 않을까? 만약 큰돈 들여 번쩍번쩍한 전원마을을 따로 만드는 목적이 인구 늘리기라면 말이다. 김동식의 <회색인간>의 서두가 진하게 마음에 와 닿는 날이다.

'인간이란 존재가 밑바닥까지 추락했을 때, 그들에게 있어 문화란 하등 쓸모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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