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기(해남문화원 이사)

 
 

해남의 고대 인구는 얼마였을까? 지난 2월 해남신문에서 '해남 7만 인구 무너질라'라는 기사를 보고 나에게는 충격적이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산이면이 지난해말 기준 4136명으로 5년 전보다 534명, 10년 전보다 1213명인 23%가 줄어 해남군의 14개 읍면에서 감소율이 가장 컸다. 가장 적은 곳이 해남읍 3%, 다음은 옥천면으로 11%였다.

해남 산이면의 농경지는 5374ha, 세대수는 2168세대로 가호당 2.5ha 정도이다. 전국 면단위에서 2번째로 많은 김제시 진봉면은 농경지 2295ha, 세대수 1550호로 가호당 1.5ha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2016년 호당 농가소득은 3692만원이라고 한다. 최소한 타 면(面)보다 1.7배 이상 소득이 높은데, 산이면 인구가 감소한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는 고대에서부터 현재까지 그동안 정리한 인구 문제 중 해남지역의 농·어업인구를 다루고자 한다.

인구는 인간생활의 중요한 요소이다. 적정한 규모의 인구를 유지하지 못하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시키지 못한다. 인구의 과잉은 환경문제, 식량난, 주택난 등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 시킨다. 인구학은 인구와 사회 등의 요인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반응하는 현상을 실증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구의 양적 측정은 역사적으로 볼 때 노동력·병력 인구의 파악 및 조세수취 등 국가적 필요에서 먼 옛날부터 시도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세계인구 측정은 약 7만년 전에는 2000명 정도였고, 향후 2050년 추정치는 78~110억명 정도로 보고 있다. 또한 약 1만년 전 인구는 100만명으로 정착농업이 본격화되면서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이 가능해지자 인구이동은 산발적으로만 이루어졌다. BC 4~3000년경에 해양민족과 유목민들에 의해 활발한 인구이동이 전개되었다. 항해기술과 선박건조술(범선)의 발달로 해양민족은 원거리 항해와 교역을 하면서 점차 새로운 땅을 개척하거나 식민지화하면서 거주지역을 확대해갔다.

백제시대 전인 마한은 시기적으로 BC 3~AD 3세기라는 설이 많으며 지역적으로 경기, 충청, 전라도다. 면적은 약 5만㎢로 54개국이 형성되었다. 마한 인구의 큰 나라는 1만여호이고, 작은 나라는 수천호로, 총 10여만호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추산한 총인구수는 약 50만명 정도라고 볼 수 있다.(마한문화재조명 국제학술대회, 2018년 10월)

이때 중국의 삼국시대(촉·위·오나라)는 3000만~5000만명으로 최대 마한의 100배보다 많았다고 추정된다. 이 시기에 해남에 살고 있는 인구는 얼마나 됐을까? 기원전 4세기에 그리스인의 평균 수명은 18세였다. 통일신라 전인 마한의 54개국은 학자 주장에 따라 다르지만 소멸하거나, 해체된 것으로 보고 있다. 면적상으로 해남은 약 1000㎢로 마한 54개국의 면적에 2%에 해당한다. 마한시대에 인구가 약 50만명이라면 1만명 정도가 해남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약 2300년 전에는 현재 인구의 14%가 살고 있었을 것이다. 현재는 간척 면적이 증가하였으나 해양과 육상 생활을 겸하고 있어 농업과 어업을 활용해 타지역보다 다소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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