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정 봉안식도 진행돼
시·글씨 뛰어났던 인물

▲ 옥봉 백광훈 영정 봉안식과 묘정비·행장비 제막식이 열렸다.
▲ 옥봉 백광훈 영정 봉안식과 묘정비·행장비 제막식이 열렸다.

조선 중기 시인이자 서예가인 옥봉 백광훈을 기리는 영정 봉안식과 묘정비·행장비 제막식이 지난 16일 옥천면 옥봉사당에서 진행됐다.

이번 행사는 옥봉 백광훈 선생을 기리고 후손들에게 역사문화적 가치를 전하기 위해 마련됐으며 수원백씨 옥봉공파송산대문종(문장 백형진)과 해남군종친회(회장 백용기) 공동 주관으로 열렸다. 참석자로는 수원백씨 문중과 더불어 해남향교, 한국문인협회 해남지부 등에서 100여명이 방문했다.

'이날 경과보고, 영정봉안식, 서원의 내력을 기록해 세우는 묘정비와 옥봉 백광훈의 행적을 적은 행장비 제막식, 비문 낭독, 공로패와 감사패 증정, 문중 대표 인사 등으로 행사가 진행됐다.

해남군종친회 백용기 회장은 "옥봉 백광훈 선생의 유물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돼 매년 옥봉사당에 많은 이들이 견학을 온다"며 "옥봉 백광훈의 문학적 가치가 후손들에게 전해질 수 있도록 학생들을 위한 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옥봉 백광훈의 유물 9종 113점은 '옥산서실 소장품일괄'이라는 명칭으로 지난 1991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181호에 등록됐다. 옥봉유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나, 문화재임에도 도난방지장치가 없고 자물쇠만 걸려 있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한편 옥봉 백광훈은 지난 1537년 장흥에서 출생했다. 5세 때 옥천면 대산리 옥산초당(옥산서실)에서 정응서의 문하생으로 글공부를 시작했다. 28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정치에 참여하지 않고 시와 서예를 즐기다가 41세에 선릉참봉이 되어 관직을 지냈다. 최경창, 이달과 함께 삼당(三唐)시인이라 불렸다고 한다. 지난 1582년 서거했고 북평면 동해리에 안장됐으며, 1590년 강진 서봉서원에 제향됐다.

지난 1712년 옥봉 백광훈의 5대손이 옥봉사를 건립한 이후에는 옥봉사에서 춘분 하루 전날 제향을 모시고 있다. 2012년에는 해남향교에 옥봉·송호·무안·옥천·월주 선생 향사봉행 청원서를 제출해 해남향교 주관으로 5위 향사위를 봉향하고 있다.

또한 옥봉서실이 화재로 소실돼 지난 1981년 옥봉 유물관을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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