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드디어 작년 1월에, 그동안 오랫동안 읽고 싶었던 책 <그리스인 조르바>를 손에 잡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어떤 유명 논술 교사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10번이든 100번이든 읽어서 완벽하게 이해하면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걸 장담한다는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같은 지식도서도 아닌데 한 달여 만에 가까스로 마칠 수 있었다.

글자를 소리로 읽을 줄은 알지만 뜻을 파악하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경우를 실질문맹이라 한다. 2014년 OECD는 22개 회원국 국민 15만명을 대상으로 실질문맹률 조사를 했다. 우리나라 중장년층의 실질 문맹률이 22개국 중 3위였다. 이는 전자제품 설명서나 약 사용법 같은 간단한 글조차 우리나라 중장년층 중 상당수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미국 청소년 문학을 대표하는 걸작인 로버트 코마이어의 <초콜릿 전쟁>은 초콜릿을 팔아 기금을 마련하는 연례행사가 있는 트리니티라는 가톨릭계 명문 사립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미국의 금서로 뽑혔을 만큼 학교 내 폭력과 비리에 대한 묘사가 노골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해가는 개인과 대중의 심리에 대한 기술도 사실적이다.

'그들이 그를 죽였다'로 시작하는 그 책은 '그', 즉 희생자 제리 르노가 링에 쓰러지는 마지막까지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글의 전개가 흥미진진했다. 그런데 유독 생뚱맞은 의외의 장면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다. '그들' 중 하나인 야경대 대장 아치가 동료의 심리에 대해서 체육관에 앉아 고민하다 학교 성적을 문득 떠올리는 장면이다. 그 대목을 작가는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이번 학기에 낙제점을 받을 것이 확실했다. 문학은 읽어야 하는 것이 가장 많았는데 그에겐 매일 저녁 네댓 시간씩이나 책을 읽을 시간이 없었다'

이런 미국의 고교 교육과정에 눈길이 간 것은 이제 고3수험생의 학부모여서였을까?

2019년 수능에 대해서 지난 2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라는 교육시민단체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역대급 불수능이라며 떠들썩했던 2019 수능에 고교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출제되었다는 게 그 이유다. 오랫동안 많은 학생들의 노력을 수능 한방으로 결정짓는 교육환경에서 살아서 충분히 공감할 수 있다. 또한 고교 교육과정에 대해서 알지 못하니 전문가를 동원해서 분석하고 평가했다는 그 시민단체의 논리에 왈가왈부할 수도 없다. 그러나 확실한 건 우리나라 고등학생들은 하루에 네댓 시간씩 책을 읽어야 하는 교육과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거다. 영어 지문은 해석했는데 의미를 모르거나 계산은 할 수 있으나 수학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은 게 현실이지 않은가?

우리나라의 실질문맹률이 75%나 되는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세계 최저 수준의 독서율과 평소 길고 어려운 글을 읽는 훈련을 거의 하지 않아 글을 읽고 이해하는 뇌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시냅스의 느슨한 연결 상태를 원인으로 들기도 한다. 또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들여다보는 텔레비전과 휴대폰도 한 몫 할 거다. 로알드 달은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 그런 괴물들 때문에 상상력은 생명을 잃어 날개를 펼치지 못하고 생각은 꽉 막혀 혼탁해지며 머릿속의 모든 것을 망친다고 말했다. 이제 그 경고는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그 75%에 속하지 않을 자신이 없는 내가 할 일은 분명하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