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명이 친자매처럼 지내는 공간
하루하루가 행복하다는 그녀들

▲ 그룹홈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앞줄 왼쪽부터 맹지혜 씨·사회복지사 이정화 씨·김보미 씨, 뒷줄 왼쪽부터 최보람 씨·이진희 씨).
▲ 그룹홈에서 함께 생활하는 가족들(앞줄 왼쪽부터 맹지혜 씨·사회복지사 이정화 씨·김보미 씨, 뒷줄 왼쪽부터 최보람 씨·이진희 씨).
▲ 김보미 씨가 복지관 제빵훈련장에서 빵을 굽고 있다.
▲ 김보미 씨가 복지관 제빵훈련장에서 빵을 굽고 있다.
▲ 최보람 씨는 복지관 로비에 마련된 미니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 최보람 씨는 복지관 로비에 마련된 미니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고 있다.

정신 장애와 신체 장애를 겪고 있는 장애인들이 학령기를 벗어나면 갈 곳이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한 가족처럼, 우리의 이웃처럼 따뜻하게 살피며 희망과 미래를 함께 열어가고 있는 사람들과 사업체·시설·기관 등도 많은 실정이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세상을 외치며 동행하고 있는 이들을 소개한다.

서양에 어린왕자가 있다면 동양에는 선재동자가 있다. 불경의 하나인 화엄경에 등장하는 선재동자는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53명의 덕이 높은 사람,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결국 진리를 깨닫고 큰 뜻을 이룬 인물로 선재동자에서 따온 '선재'에는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해남에도 이를 의미하는 선재의 집이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더디지만 꾸준히 노력해서 당당한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진 선재의 집은 해남읍 A 아파트에 지난 2011년 문을 열었다. 여느 가정집과 다를바 없는 30평쯤 되는 아파트인데 이곳에는 현재 20대 발달장애인 여성 4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발달장애인이 혼자 살아갈 수 있고 사회에서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일반 가정과 같은 환경에서 자립생활과 정서안정, 사회적응, 여가생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는 장애인공동생활가정, 흔히 그룹홈이라 불리는 곳이 바로 선재의 집이다. 해남에서는 유일한 그룹홈으로 도비와 군비를 지원받아 만들어졌다.

최보람(26), 이진희(23), 김보미(22), 맹지혜(22) 씨는 이곳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엄마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사 1명과 함께 생활하고 주말에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지난 19일 방문한 선재의 집. 나이가 20대로 비슷하고 가족처럼 지내다보니 틈만 나면 깔깔거리고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여느 집 가정집하고 똑같다. 식사 시간이 되자 사회복지사 엄마는 국을 끓이고 4자매는 일사분란하게 역할을 나눠 반찬을 나르고 젓가락과 숟가락을 놓고 밥을 퍼고 그리고는 모여 앉아 즐거운 식사를 함께 한다. 그리고 식탁을 정리하고 설거지도 돌아가면서 완벽히 해낸다.

설거지까지 끝낸 셋째 보미 씨가 보기에도 먹음직스럽게 깎은 과일을 취재진에게 내오면서 '여기요', '맛있게 드세요'라고 말한다. 그리고는 4자매가 보여줄게 있다며 TV음악 프로그램에 맞춰 한바탕 댄스파티를 연다. 행복한 미소와 웃음이 떠나가지 않는다.

이곳에서 그녀들은 개인 위생 관리부터 청소와 정리, 요리와 식사예절을 익히고 세탁을 해서 빨래를 개고 널기, 식사 준비와 설거지, 전화예절과 대중교통·금융기관 이용, 마트에서 함께 장을 보고 외식도 하고 카페와 노래방 등 편의시설 이용을 익히고 지역주민과 교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함께 한다.

또 기초학습은 물론 산책과 1박 2일 캠프 등도 함께 한다. 특히 단순히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라 시키는 데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카페는 어디로 갈지, 어떤 음식을 주문할지 등을 스스로 결정하게 하고 집에서 용돈을 받아 자기 돈을 쓰는 연습을 하면서 자기의사 결정권이나 선택의 경험을 하도록 하고 있다.

사회복지사 이정화(46) 씨는 "집에 아들만 둘이고 다 20대인데다 스킨쉽도 서로 잘 안하는데 여기에 오면 딸과 같은 4명이 어찌나 살갑게 대해주고 '사랑해요' 하며 안기고 스킨쉽을 자주 해줘 정말 좋다"며 "특히 음식을 잘 못하는데 딸들이 잘 먹어주고 항상 밝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계속 이렇게 행복하게 함께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보미 씨는 "여기서 같이 있으니 좋아요"라며 "결혼도 하고 싶고 직장도 갖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녀들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곳, 그곳이 선재의 집이다.

아침에 그녀들이 향하는 곳은…

선재의 집에서는 4명의 발달장애인이 하루종일 집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침에 갈 곳이 있다. 선재의 집은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예행연습을 하는 공동생활 가정이다 보니 직업 훈련도 빠지지 않는다. 훈련을 통해 직업을 갖도록 한다는 취지보다는 직업활동 훈련을 통해 출근하고 지시에 따르고 일을 해내며 기본적인 직업소양을 갖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셋째 보미 씨는 화요일과 목요일이 되면 오전 9시에 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에 있는 제빵 훈련장으로 출근한다. 여기서 다른 장애인들과 함께 제빵사자격증이 있는 이영매(49)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계란과 설탕을 넣고 반죽을 해서 오븐에 구우며 카스테라와 머핀, 쿠키, 꽈배기를 만들어낸다. 이렇게 만들어 낸 빵은 복지관 안에 있는 미니카페에 이른바 납품돼 판매되는데 수익금은 빵을 만드는 장애인들에게 돌아간다. 이곳에서 만든 빵 중에 꽈배기가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하는데 복지관을 찾는 노인층에서 달달하고 맛도 좋으니 항상 완판이 된다고 한다. 지난해 대흥사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각 경로당에 선물할 빵 1300개를 주문했는데 제빵훈련에 참여하고 있는 4명의 장애인들이 사흘만에 이를 완벽히 해냈다고 한다.

이영매 사회복지사는 "그때는 힘들면서도 정말 뿌듯했다. 우리 장애인들이 불평불만 하나 하지 않고 빵을 굽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즐겁게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과 감동을 느낀다"고 말했다.

취재를 마치고 가겠다고 인사를 하니 보미 씨가 "건강하세요"라고 밝게 웃으며 말한다. 이것이 바로 기본적인 직업소양이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복지관 로비에는 지난해부터 미니카페가 운영되고 있다. 선재의 집 첫째인 보람 씨가 바리스타로 변신해 커피를 만들고 판매하고 있는 곳이다. 그녀가 평일에 매일 아침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장애인활동지원사와 장애인들, 복지관을 찾는 내방객들에게 소문이 나 인기인데 수익금 가운데 재료비 등을 뺀 나머지는 보람 씨에게 주어진다. 바리스타 자격증은 없지만 캡슐을 커피머신에 넣고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라 주문부터 커피를 내리기 까지 익숙한 솜씨를 뽐낸다. 캡슐 하나에 원가가 600원 정도인데 커피는 종류에 따라 1000원에서 2000원에 판매된다. 보람 씨가 커피 내리기를 좋아하고 손님들도 싼 가격에 이용하다 보니 점심 무렵에는 대기 줄이 생기기도 한다.

다만 계산할 때 아직 돈 개념이 서툴다보니 만원이나 5만원권을 받게 되면 잔돈을 거슬러 주기가 힘든 상황이 온다. 이런 위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사회복무요원이 옆에서 돕는 역할을 한다. 커피가게를 차려 장애인들을 많이 고용하고 싶다는 보람 씨는 오늘도 커피 주문을 받고는 "고맙습니다"하고 밝게 웃는다.

선재의 집도 이용기간이 있다. 원칙적으로 2년이다. 2년이 지나고 대기자가 원하면 더이상 있을 수 없게 된다.

기능별 그룹홈이 더 있었으면…

해남에는 장애인을 위한 그룹홈이 이곳 선재의 집 한곳뿐이다. 장애인들이 홀로서기에 앞서 자립생활과 사회생활 적응, 그리고 기본적인 직업소양을 갖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주말에는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일반 장애인 시설과 달리 가족과의 단절도 없다. 그만큼 장애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시설이다. 군비와 도비 지원을 받아 아파트를 사서 4명이 생활하고 있고 관리비와 사회복지사 인건비를 비롯한 운영비도 지원 받는다. 여러 기관단체에서 물품을 후원해주기도 하고 후원계좌를 통해 이들을 도울 수도 있다.

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 박경단 사무국장은 "우리 장애인들에게 기능별, 단계별로 그룹홈이 있었으면 한다. 그룹홈에서 생활하기에 앞서 6개월 정도 독립생활을 경험하도록 하는 체험형 그룹홈도 필요하고 가족이 죽을 때까지 돌봐야 하는 최중증장애인들을 위해서는 영구적으로 보호가 가능한 영구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사무국장은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라 지방자치단체의 의지도 필요하지만 이 문제가 정부나 지방정부만의 몫이거나 개인차원의 문제가 아닌 우리 이웃의 문제, 지역사회의 문제인 만큼 가족들과 기관, 지역사회가 함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자치단체와 함께 중장기적인 방안을 마련해 모두가 함께사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게 필요하다고"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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