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주 시인의 10주기를 맞으며
김경윤(땅끝문학회장)

이 두메는 날라와 더불어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지는 /녹두꽃이 되자 하네. <김남주 「노래」중에서> 어두운 시대 불꽃처럼 살다 간 김남주!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어언 10년이 지났다. 그 동안 세상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아직도 그의 ``노래``는 우리들 가슴에 남아 청송녹죽(靑松綠竹)으로 살아 있다. 시인으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시대, 시를 사회 변혁의 무기로 삼아 反유신, 反독재 투쟁의 전면에 나섰고, 민중의 해방과 조국통일의 전선에서 자유와 평등을 위해 ‘전사``로서 살다간 시인 김남주.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해를 향해 사방팔방으로 팔을 뻗고 있는 저 나무를 보라 /주름살 투성이 얼굴과 /상처 자국으로 벌집이 된 몸의 이곳저곳을 보라 /나도 저러고 싶다 한 오백 년/쉽게 살고 싶지 않다 저 나무처럼 /길손의 그늘이라도 되고 싶다.’ <고목>고 노래했듯이, 이제 그는 한국문학사에 ‘고목`` 아니라 우뚝 선 ‘거목``이 되어 푸르른 가지와 이파리를 퍼뜨리고 있다. 김남주는 민중이 해방되기를 바라는 혁명의 노래를 부르다 갔다 . ``피로 씌어진 언어의 화살``인 그의 시에는 ‘피묻은 진실``이 담겨 있고, 아직도 그의 노래 <조국은 하나다> 는 우리 민족의 슬로건이다. 그리고 그의 시들은 한국문학의 형상적 이념으로 계승되어 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제, 그가 영향을 받았던 하이네, 네루다, 마야코프스키 같은 외국 시인들처럼 제3세계의 민중들과 시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다.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기도 한, 베트남의 대표적 문인인 반레가 지난해 10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가 서울 시내의 쇼핑이나 관광은 한사코 사양하자, 안내자가 “가고 싶은 데가 있긴 있느냐.”고 묻자, “할 수 있다면, 광주 망월동의 시인 김남주 묘역을 참배하고 싶다.”고 했다. 1980년대 초반 베트남의 라디오에서 김남주의 시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감옥에서 시를 썼다는 ‘한국의 전사시인’을 생각하며, 망월동을 찾은 그는 김남주의 무덤에 국화꽃 바치고, 세 번 절을 했다. 그리고 일어나서 그는 조용히 흐느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김남주 시인이 단지 한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인물임을 말해주고 있다. 해남은 어느 지역보다 유명한 시인들을 많이 배출한 곳이다. 그래서 ‘시인의 고장``이라고들 한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을 잘 살려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김남주 같은 시인을 중심으로 시문학을 매개로 한 문화관광의 허브(Hub)를 구축한다면 향후 지역의 이미지 제고와 문화관광산업의 활로도 더욱 넓힐 수 있을 것이다. 김남주 시인의 10주기를 맞아,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라도 김남주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우리 지역의 문화적 유산으로 자리매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 기회에 김남주 생가 복원, 문학관 건립과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이 논의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뜻 있는 분들의 작은 정성을 모으고,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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