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3·1운동이 아니라 3·1 혁명으로 명칭을 바꾸자는 주장이 여러 군데서 나온다.
3.1운동이 혁명임을 증명하려면 운동 전후의 사회변화 등 다양한 사실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들이 일차적으로 동원되겠지만 논쟁은 '혁명'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질문으로 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혁명이 현실을 지탱하는 가장 근본적인 사회구조, 그 틀을 바꾸는 것이듯이 혁명, 혁신은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어떤 것을 바꾸는데서 시작된다.
동물의 가죽을 벗겨내어 말리면 딱딱하게 굳어 무엇에도 쓸 수 없는 덩어리에 불과하다. 이것을 약품 처리하고 무두질해서 부드럽게 바뀐 상태의 피혁을 의미하는 '가죽 혁(革)자'. 동물에서 벗겨낸 거죽을 오그라들지 않도록 나무판에 못으로 박아 말려놓는 피혁 제작의 첫 단계를 형상화한 것이란 말을 들은 적 있다. 사실은 모르겠으나 그럴거라고 생각한다. 옛 사람들의 눈에 이 변화는 딱딱한 거죽에 불과한 것이 완전히 확 뒤바뀐 놀라운 변화, 그저 주변이나 지엽이 아니라 양적인 변화가 아닌 질적으로 확 뒤바뀐 것을 대표할만한 사태로 보였을 것이다.
혁신이란 말을 많이 한다. 규제혁신, 생활 혁신, 혁신적 사고방식 등 혁신의 말은 넘쳐나도 시간 지나고 보면 혁신은 안되고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없다. 혁신이라는 이름만 빌려온 지엽의 변화이거나, 치장에 불과한 것을 혁신이라 우겨 선전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혁신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막힌 생각,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찾는데 골몰한다.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혁명, 혁신은 결과적으로는 생각을 확 바꾸는 기막힌 아이디어에서 나온 게 틀림없지만 처음부터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접근해선 오히려 잘 안된다. 이 문제는 왜 해결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만을 절실하게 붙잡고 이 문제의 해결을 가로막는 무엇이라도 바꾸겠다고, 사고의 범위나 폭을 넓게 두었을 때 가능해진다. 불가능하리라 여겨서 아예 제외해놓거나, 금지라는 사고에 묶여 있어선 혁신은 기존의 테두리 내에서 자리바꿈 해보는데서 멈추고 만다. 사이비 혁신은 문제해결의 절실함 없이 시작해서 아이디어 찾기에만 골몰한 결과일 때가 많다.
농민수당! 해남이 이룬 전국적 혁신이라 부르는 이들이 많다. 농민을 위한, 농민의 고통 해결이라는 지향점을 분명하게 쥐고 있는 자의 발상에서 나올 수 있었다.
생산비, 농산물 시장가격, 경쟁력 운운 등 기존의 틀 내에서 생각해선 불가능한 것이다. 나올 수 없다. 혁신,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걸 꺼려하는 이들이라면 기업에 주어지는 각종의 특혜나 지원, 그 십분의 일만이라도 농민에게 주어야 한다고 생각해도 이해 될 것이다.
70년대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정책은 농민을 희생시키고 거기서 나오는 저곡가, 저임금으로 기업을 키우는 방식이었다. 농민, 농촌 가난의 뿌리가 기업살리기에 있다는 건 역사적 사실이다. 이때 재벌들에게 주어졌던 특혜를 보면 기업을 경영하는 일이 거의 땅짚고 헤엄치기로 보인다. 이제는 재벌중심의 경제는 더 이상 가능하지도 않고 많은 비용을 치르더라도 거기서 벗어나야 할 때가 오기도 했다.
농민수당, 전국의 모범이 시작되었다. 향후 다양한 보완책들까지 나와야하겠지만 해남이 이룬 혁신,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