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명조(共命鳥)는 실크로드 길목이었던 신장위구르 지역에 전해져 오는 전설속 새로 머리가 2개이고 몸은 하나인 이두일신조(二頭一身鳥)로 서로 생명을 공유한다. 쿠차(Kucha)의 고승 쿠마라지바(鳩摩羅什)가 번역한 아미타경에도 등장하는 상상의 새이다.

둘은 한쪽이 오른쪽으로 가고 싶다고 하면, 다른 한쪽은 왼쪽으로 가고 싶다고 하고, 다른 한쪽이 어딘가 놀러 가고 싶다고 하면, 한쪽은 몸이 피곤하니 쉬고 싶다라고 하는 것 처럼 늘상 의견이 서로 대립하여 싸우기 일쑤였다. 어느 날 한쪽이 잠들어 있는데 다른 한쪽이 맛있는 빨간 열매를 발견하고 혼자 먹어버렸다. 깨어난 한쪽은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것이 이상하여 물어보자 "우리는 한 몸인데 그냥 먹어도 되겠지 하고 혼자 먹었다"고 말했다. 화가 난 다른 한쪽은 우연히 독이든 열매를 발견하고는 지난번 일에 복수를 하고자 먹어버렸다.

결국은 둘 다 고통 속에서 죽어가게 되는 어리석음을 말하는 우화이다. 이처럼 늘상 싸우고 사이가 안 좋은 새도 서로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는 곳이 극락(極樂)이라고 한다.

쿠마라지바는 중국 후진시대에 장안으로 끌려와서 파계를 하게 되는 파란만장한 인생역정 속에서도 300여권의 불교경전을 한자로 번역했다. 산스크리트어 불경을 한문으로 번역하면서 글자 그대로가 아닌 자신이 충분히 소화하고 이해한 후 의미를 전달코자 했다.

그는 번역의 어려움을 "일단 씹은 밥을 다른 사람에게 먹이는 것과 같다. 단지 맛을 잃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구역질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것과 같다" 라고 했다. 그는 '극락'이라는 말이나 '색즉지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처럼 창조적 언어를 통해 세상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기에 고통이나 번민에 빠지지 말고, 혼란한 사회, 불안한 사회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그렇기에 15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가 번역한 경전은 그대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공명조는 우리들 모습이고 우리가 우주와 나, 자연과 나, 너와 나의 관계에서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면 공멸한다는 것을 알려 준다.

좁게는 가정에서 더 나아가 지역사회, 국가에 이르기 까지 인간관계의 본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것은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어 내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다른 이들의 노고에 힘입은 바 크다.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선생님과 학생,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직원, 상거래에서 판매자와 소비자, 신문사와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가르치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상호관계를 통해서 가르침을 받고 서로 성장발전 하여 가는 것이다.

2018년이 저물고 2019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서로가 가르침을 주고받고, 성장발전 하는 관계 속에서 남북간 평화정착, 사회적 갈등과 격차가 해소되는 사회통합이 이루어지길 소원한다. 자기가 서있는 위치에서 자기입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를 배려하는 것을 지금 바로 옆자리에 있는 사람에서부터 차츰 범위를 넓혀 가는 실천이 중요하다.

"만일 나라가 스스로 분쟁하면 그 나라가 설 수 없고 만일 집이 스스로 분쟁하면 그 집이 설 수가 없다 (마가복음 3장 24~25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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