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점빵'이라고 했다. 표준말로 하면 '점방(店房)'이다. 동네 가게를 그렇게 불렀다. 주전자를 들고 점빵으로 술 심부름을 다녔다. 마을 앞 들판을 가로질러 빈 주전자 가득 막걸리를 채워 아버지께 가져다 드렸다. 호기심이었을 게다. 주전자 주둥이에 입을 대고 두어 모금 마시곤 했다.

제법 맛이 있었다. 상습이었다. 그리고 나면 찰랑거리며 흘러넘치지 않아 좋기도 했다. 그때 동네 점빵에 배달되던 막걸리 상표가 '해창막걸리'. 지금 서울 인사동 막걸리 전문점에 가면 해창막걸리가 진열되어 있다. 독주에 길들여진 입맛이라 예전의 느낌은 아니지만, 막걸리의 향기 속에서 어린 시절의 기억이 술기운처럼 떠오른다.

지난 5월, 중국 칭하이성(靑海省) 부성장이 방문하면서 지방 교류와 문화행사를 타진해왔다. 완도의 옛 이름 '청해진'과 칭하이성이 어울릴 것 같아 인연을 맺어주었다. 아울러 '차와 글 술' 행사를 미황사, 대흥사 일지암, 해창막걸리와 협력하여 진행했다.

절에서 술 행사까지 할 수는 없는 법. 화원 <파인비치>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칭하이의 명주 '칭커주(靑과酒)'와 해남의 '해창막걸리'가 만나는 행사를 개최할 수 있었다. 멋진 경험이 됐다. 다만, 자그마한 아쉬움도 있었다. 술은 흐린 술에서 맑은 술로 발전해왔다. 물론 와인 같은 술도 있지만, 술의 진화는 맑고 깨끗한 쪽으로 진행되어 온 게 분명한 문화적 사실. 해창막걸리의 전통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향기롭다.

고향 막걸리의 전통이 오래도록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분명하다. 그럼에도 고향을 대표하는 증류주 혹은 맑은 술의 전통을 기대하는 마음 또한 확연하다. '진양주'가 그중에 하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술은 본시 여행을 싫어하는 법"이나 고향을 대표하는 맑은 술이 방방곡곡으로 널리 퍼질 수 있는 날을 꿈꾼다. 술과 음식의 조합(마리아주)이야말로 문화의 대표 격이다. 해남 음식과 해남 술의 결혼이다.

그렇다면 해남의 대표적인 음식 문화는 무엇일까.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을 방문하게 되면 반드시 찾는 식당이 있다. '성내식당'이다. '김국'이다. 다른 음식도 별미이지만, 아이들의 기억 속엔 그저 김국이다. '이번에도 김국 먹으러 가는 거지' 이렇게 물어오기에 버릇대로 성내식당을 찾는다.

대흥사 관음암의 '김 장아찌' 또한 기억 속의 별미다. 다만, 절이라서 접근의 한계가 있다. 떡갈비, 녹우당의 비자강정 등 어느 음식이 해남 술과 아름다운 조화 속에 해남의 술 문화, 음식 문화를 대표할 수 있을까.

시민운동 차원에서 좀 더 과감한 정책과 운동이 필요한 때다. 지방 음식 문화가 획일화되고 있다. 지나치게 발효식품이 찬양된다. 효소 만능주의 또한 위험해 보인다. 그저 솥에다 집어넣고 쌀과 함께 쪄내면 되는 줄 안다. 고춧가루 범벅의 찌개 문화다. 잡탕에 가까운 섞어찌개다.

무엇이든 반죽해 부쳐낸다. 이런 문화 속에서 해남 음식의 정체성 혹은 정통성은 무엇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제대로 된 고구마 요리가 있든가.

월동배추를 활용한, 봄동을 이용한 해남만의 요리가 있었던가. 김의 주산지답게 김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요리는 김국 말고 또 무엇이 있을까. 해남 하면 떠오르는, 해남에 다녀오면 이 음식을 이 술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까. 그렇다고 생각되면, 그렇다는 내용을 좀 더 강화하고, 토론해 나가 문화와 전통으로 정립하자.

그렇지 않다고 생각되면 새롭게 내용을 만들고, 채우고, 세워나가자. 다만, 민간차원, 시민운동 차원이었으면 좋겠다. 불필요한 정치적 잡음이나 바람으로부터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해남의 음식 문화가 향토음식 문화의 대표이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한 세대 만에 사라졌다. 물론 늦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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