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란(사회복지사)

 
 

12월이 저물어 간다. 이맘 때 즘이면 누구나 한해를 돌아보고 자숙의 시간을 갖거나 마무리 하지 못한 일에 대해 막바지 최선을 다하리라.

땅끝 해남은 겨울에 하얀 눈을 만나기가 좀체 드물기에 언제쯤이면 흰 눈이 소복이 쌓일까? 맑은 하늘을 바라보다 5일 시장구경에 나섰다. 월동채비를 서두르느라 여기저기 김장준비에 손길이 분주한 풍경이다. 갖가지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며 이것저것을 구경하다 노점상들이 늘어선 골목으로 들어서자 싱싱한 제철 생선들이 즐비하게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해남읍 5일시장이 열리는 날이면 제비집이 바빠진단다. 도대체 제비집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고 직접 가서 확인해 보라며 동행한 지인의 말에 가게를 기웃거리며 제비집을 찾아 들어갔다. 간판은 없고 강남으로 떠나 텅 빈 제비집만이 쓸쓸하게 입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안으로 들어서자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두 분이 열심히 손놀림을 하며 "어서 오세요"라고 반갑게 맞이하시는 것이다.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을 것 같은 투박한 밥집이 정겹게 다가왔다. 밥을 주문하고 앉아 있자 동그란 쟁반위에 수북하게 담은 갖가지 푸짐한 반찬과 찌개 그리고 따끈한 국물까지 가져다 주셨다. 친정엄마 밥상을 받는 것 같아 탄성이 절로 나와 맛을 음미하며 맛있게 먹고 "계산할게요."라고 하자 "2,000원이요."잘못 들었나 다시"얼마요?"라고 다시 여쭤보니 똑같은 대답을 하셨다. 계산을 하고도 왠지 뒤통수가 부끄러워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보니 칠십 후반의 연세라 하시며 소녀처럼 방긋 웃으셨다. 먹었던 밥보다 더 작은 액수의 돈을 지불하려니 나도 모르게 "죄송합니다." 라고 말씀드리자 " 괜찮어라우 한번쯤 들어와 먹고 갈만하지라우"라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말씀하시며 나의 어색함을 웃음으로 위로해 주셨다. 5일 시장에 나와 장사를 하시는 분들을 위해 선걸음에 먹고 장사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주인의 봉사정신, 밥 한공기의 값밖에 안 되는 식사비를 받고 장날만 되면 이렇게 싼 가격으로 밥을 팔고 계시니 가슴이 뭉클해져오고 아직도 살만한 세상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하루 내내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쩌면 한 끼 재료비도 안 되는 밥값을 받고도 환한 얼굴로 손님을 맞으시던 행복한 모습이 한 해가 저물어 가는 12월, 그분들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는다. 노동의 대가에 기대지 않고 세상에 기부하는 멋진 분들이 아닐까? 하지만 내년에는 조금 더 받아서 재료비라도 될 수 있도록 하신다면 하는 생각과 오래도록 5일시장과 함께 그 식당이 날로 번창하고 두 분이 건강하시기를 2018년 12월의 끝자락을 붙잡고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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