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대학가에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바뀌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대학의 같은 학년 같은 반의 조별 수업에서 재수를 거쳐 늦게 입학한 그래서 같은 반 친구들 보다 한 살이 더 많은 당신은 군대까지 다녀와 복학을 했으면 같은 반 동료들보다 세 살이 위인 셈이다. 옆자리 여학생은 일곱 살에 초등학교를 입학했고, 군대도 가지 않은데다 재수도 거치지 않았으니 자신보단 네 살이나 더 먹은 당신에게 'ㅇㅇ씨!' 호칭으로 부르다니! 이런 문화가 펴져간다는 소식에 당혹스러워 할 당신의 모습이 보인다. 앳되고 어려 귀엽기까지 한 여학생이 '오빠!'도 '선배님!'도 아닌 'ㅇㅇ씨?'. 아주 새파란 후배가 자신과 맞먹으려 드는 이 사태에 당신은 무슨 생각, 어떤 기분이 드시는가?

'입학 학번을 묻고 생년을 따지다가 후배나 동생이 되기 싫은 학생들은 '민증 까!' 라며 부딪히는 풍경은 대학에 흔했고, 우리 사회 전반에도 퍼져있는 풍경이다. 민증을 까면서까지 서로 형님이네 선배네 우기는 걸 사소하다고 넘길 수 없다. 사회의 인간관계는 미세하게 권력관계가 작동하고 있고 권력의 우위에 선 이는 자기 생각과 주장을 자유롭게 말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쉬운 반면 권력의 하위에 선 이는 늘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다. 'ㅇㅇ야!' 후배의 이름을 땅 땅 부르는 사람에게 꼬박 꼬박 '예, 형님!'으로 대답해야 하는 처지에 상대의 부당함이나 잘못을 지적하고 거부 하긴 어려운 일이다. 새로운 젊은 세대들은 이 문화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는 거다.

당연히 반대를 넘어 반발할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런 딱딱하고도 3자적인 호칭이 서로 관계를 어색하게 하고, 하고 싶은 말도 편안하게 하지 못한다는, 그래서 조직이나 공동체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반대가 들린다. 마치 후배들 생각해서 어색한 분위기 해소를 위한 거라는 듯이 말하는 반대론. 자세하게 들여다보아야 할 지점은 어색, 불편의 실체다. 입장 바꾸어서 보아야 한다.

'ㅇㅇ씨!'의 호칭이 불편한 이들은 누구인가? 선배 상급자가 아닌가. 선배는 객관적이고 평등한 입장에 서게 되는 호칭을 쓰면 잃을 것 밖에 없다. 부당한 지시나 명령들은 일방적인 권력관계의 틀 속에서 더 작동하기가 쉽다. 후배의 입장에선 대등하게 대접받고 평등하지 않은 게 더 어색하고 더 불편할 뿐이다. 불편의 실체는 편하게 권력관계의 유리한 지점에 그대로 있고 싶은 선배의 마음이고 생각일 뿐이다. 어색이나 불편을 좋아할 이는 아무도 없다. '민증 까!'를 외칠 필요도 없이 바로 관계의 불평등을 뛰어넘는 신세대들이여. 그대들은 생활 속의 민주주의를 실현해가고 있구나!

지역에서 이런 문제는 훨씬 심하다. 어느 직장이나 첫 대면이 이루어지고 나면 술자리니 회식의 기회를 잡아 바로 신입 후배에게 말까기가 이루어진다. 권력관계에서 가뜩이나 밀려있는 후배 신입자는 아예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를 상납하기도 한다. 공직 사회의 공식적인 자리에서까지 'ㅇㅇ야!'가 남발되는 경우도 많다.

세상이 바뀌려면 말이 바뀌어야 한다. 말은 생활화가 습성화되어 바뀌기가 쉽지는 않다. 'ㅇㅇ야!'에서 'ㅇㅇ씨'로, '예, 형님!'에서 'ㅇㅇ씨!'로 바꾸어 부르기를 나부터, 주변에서부터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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