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길은 멀고 험해도
끌어안을 가족이 있어 행복

▲ 6년만에 친정집을 방문한 딸과 어머니가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 6년만에 친정집을 방문한 딸과 어머니가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 6년 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집안잔치가 펼쳐졌다.
▲ 6년 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집안잔치가 펼쳐졌다.
▲ 6년 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시 가족사진을 남겼다. 가족 사랑은 나라와 국경을 초월해 모두에게 소중하다. (앞줄 왼쪽부터 이선희 씨 둘째 아들, 부모님, 조카. 뒷줄 왼쪽부터 여동생 부부, 큰 아들, 이선희 씨 부부)
▲ 6년 만에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다시 가족사진을 남겼다. 가족 사랑은 나라와 국경을 초월해 모두에게 소중하다. (앞줄 왼쪽부터 이선희 씨 둘째 아들, 부모님, 조카. 뒷줄 왼쪽부터 여동생 부부, 큰 아들, 이선희 씨 부부)

| 싣는순서 |

1. 해남의 정, 지역사회의 힘 땅끝에서 땅끝으로
2. 6년 만에 손잡고 불러보는 어머니, 아버지 - 다문화가족 친정방문 동행기
3. 우리가 몰랐던 일, 이제는 알아야 할 일 - '한-베 함께 돌봄센터'를 가다
4. 다문화가족도 우리 '가족'이고, '희망'이며 '미래'입니다

지역사회가 힘을 모아 올해 친정집을 직접 방문하게 된 다문화가족은 모두 5가족. 지난해 2가족에서 크게 늘었다.

결혼이주여성 출신지로 보면 베트남이 4가족, 필리핀이 1가족으로 결혼 후 한번도 방문을 하지 못했거나 자녀가 외조부모를 한번도 만나지 못한 경우, 남편과 사별후 홀로 자녀를 키우며 친정집을 가고 싶다는 사연 등을 가졌다.

결혼이주여성 상당수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국제결혼을 하게 됐지만 결혼 이후 경제적 어려움이라는 같은 이유로 친정집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19일부터 23일까지 3박 5일 일정으로 베트남 친정집을 방문하게 된 이선희(37), 정해철(57)씨 부부와 취재 차 동행을 하게 됐다.

이 씨는 지난 2005년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해 사랑스런 13살, 11살짜리 두 아들을 두고 현재 농사를 지으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 결혼 이후 6년 전에 가족 모두와 친정집을 방문한 이래 이번이 두 번째이다.

남편은 그때 앞으로 3년마다 다시 오자고 가족들과 약속했지만 살다보니 그렇게 되지 못했고 이번에 다시 가족 4명이 함께 방문을 하며 그 때의 약속을 늦게나마 지키게 됐다. 이 씨는 그동안 전화통화나 영상통화로 안부를 묻고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직접 만나 손을 잡고 아버지, 어머니를 6년만에 다시 불러볼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렘이 앞서기만 했다. 이번 방문에는 정 씨보다 두 살 많지만 초등학교 동창이며 같은 마을에 함께 살고 있는 절친인 김일행(59), 이연순(53)씨 부부가 사비를 들여 동행을 했다.

친구 아내의 친정집을 방문해 친구 아내가 어렸을 때 어떻게 생활해 왔고 지금 친정집 가족들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직접 체험하며 친구와 친구 아내를 더 알아가기 위해서이다.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해남에서 인천공항까지 5시간을 이동해 인천에서 호찌민까지 다시 5시간 비행을 하고 베트남 현지에서 렌트카를 타고 호찌민에서 껀터까지 4시간, 다시 껀터에서 하우장까지 1시간이 걸렸다. 우리로 따지면 껀터는 전라남도, 하우장은 해남군이 된다. 6년 전에 왔을 때보다 베트남도 도로 사정도 많이 변해서인지 이 씨는 집으로 가는 길을 잘 찾지 못했고 결국 어머니와 전화 통화를 수시로 하며 친정 마을로 가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친정집은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곳에 위치해 미리 마중나온 아버지와 여동생 부부의 도움으로 오토바이나 배를 타고 5분에서 10분을 또 이동해야 했다. 해남에서 출발해 이동시간과 대기시간, 입출국 심사 시간 등을 합치면 24시간이 지나야 친정집에 도착하는 셈이다.

손만 잡고 있어도
행복하기만 가족

이 씨의 어머니인 누엔티안(56) 씨는 6년 만에 만난 딸을 보자마자 얼싸안고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선희 씨도 그런 어머니 품에 안겨 눈물 대신 기쁨의 미소로 화답했다. 6년만에 어머니 손을 잡고 어머니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이 씨의 아버지인 레반댑(60) 씨는 사위를 먼저 챙겼다. 악수가 오고가고 말은 통하지 않아도 '잘왔네 잘왔어'라는 표정이 얼굴에서 묻어났다. 사위도 미안함과 고마움이 교차한 듯 밝게 웃으며 '저 왔어요'라는 표정으로 인사를 했다.

6년 만에 보는 외손주들은 어찌 그리 이쁜지 누엔티안 씨는 외손주들에게 뽀뽀 세례를 날리고 머리를 쓰다듬었고 외손주들은 순한 어린 양들이 돼 쑥쓰러움에 어쩔 줄 모르면서도 외갓집 정이 이런거구나를 속으로 생각하는 듯 했다.

이 씨의 여동생인 레티데우(33)와 제부인 후인민종(35) 씨는 이 씨의 부모님을 모시고 집에서 함께 살고 있다. 여동생 부부에게는 7살 딸이 있는데 이 씨는 귀엽고 이쁜 7살 조카를 눈앞에서 직접 처음 보게 됐다. 자신은 아들만 둘이다 보니 더욱 정이 가고 사랑이 가는 모양이다. 밤 늦은 시간이었지만 집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먼 곳에서 온 딸과 사위, 외손주들을 위해 한상 가득 음식을 내어오며 가족끼리 웃음이 떠나지 않는 이야기꽃을 이어갔다.

어머니는 "딸과 사위를 직접 보니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정말 기쁘고 어젯밤에는 잠도 제대로 청하지 못했다"며 "나는 딸만 둘을 낳았는데 딸은 아들을 둘을 낳아 기쁘고 특히 외손주들이 그동안 많이 큰 것을 직접 보니 정말 정말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사위가 6년 전보다 살이 찐 것 같다"면서도 "옛날 그대로 모습으로 건강해보여서 기쁘다"고 밝혔다.

이선희 씨는 "여동생 부부가 어머니, 아버지를 모시고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된다"며 "이렇게 이쁜 조카를 보니 딸을 갖고 싶다"고 말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이 씨의 남편은 "장인, 장모는 물론이고 아내가 이렇게까지 좋아하니 앞으로 진짜 최소 3년마다 한번씩은 처갓집을 방문해야겠다"고 말했다.

이선희 씨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건강을 바라고 한국의 정을 안겨드리기 위해 인삼과 함께 한국산 마른 오징어를 선물했고 처음 본 조카를 위해서는 앞으로 잘 자라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는 의미로 크레파스와 색연필을 선물했다. 6년 만에 가족들의 만남은 떠나지 않는 웃음소리와 끝을 모를 이야기꽃으로 베트남 밤하늘을 더욱 아름답게 수놓았다.

다음날 다시 방문한 이선희 씨 친정집. 어제는 밤이라 하지 못한 집구경을 이선희 씨 아버지에게 청했다. 집은 몇 년 전에 수리를 해서 슬레이트 지붕 등이 사라졌지만 껀터 외곽의 이른바 변두리 마을이 그렇듯이 우리나라 6·70년대 집풍경과 비슷하다.

닭과 거위를 키우고 바나나 나무에서 수확한 바나나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집 한켠에는 땔감을 쌓아놓고 있다. 가스레인지로 일부 요리를 하지만 여전히 나무와 불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화장실은 집 밖 개울가에 그대로 쓸려 보내는 식으로 마련돼 있고 빗물을 받아 식수로도 사용하며 집 바로 옆에 이선희 씨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집 안 입구에는 가족들의 안녕과 부와 행운을 가져다 달라는 의미로 제당이 만들어져 매일 향을 피우고 있고 그 옆쪽으로 가족들의 사진이 빼곡히 장식하고 있다.

6년 전 딸이 왔을 때 가족들이 같이 찍은 사진과 외손주들의 돌 사진도 한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집은 조금 변했지만
부모님 사랑은 그대로

또 우리나라로 치면 읍·면사무소에서 준 모범시민상장이 보이는데 이 씨의 아버지가 받은 것이다. 셋째 안낳기와 법 위반 하지 않기, 전기절약하기, 폭력사용하지 않기 등을 잘 지켜 이른바 모범시민상을 받았다고 한다.

베트남은 대가족 사회로 북부지역은 맏아들이 부모와 함께 살며 봉양하고 껀터와 하우장 같은 남부는 막내아들이 부모를 봉양하고 제사도 지내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이 씨의 아버지는 "사위가 큰 아들이라고 해서 사실 우리 딸이 시부모도 안 모시고 제사도 안지내는 줄 알고 기쁜 마음에 결혼을 승낙했는데 알고 봤더니 두 나라 문화가 다르더라"고 말해 웃음바다를 만들었다. 하룻밤 지내본 소감을 이선희 씨의 남편 친구인 김일행 씨 부부에게 물어봤다.

"외국에 나가 관광지만 보고 오면 남는 것이 사진 밖에 없는데 이렇게 친구 아내의 친정집을 방문해 사는 모습을 실제로 보고 함께 하니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씨의 아버지에게는 "사위가 해남에 있을 때도 장인, 장모 생각을 많이 했다"며 친구 돕기에 나섰다.

이선희 씨는 "한국에 있을 때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이 어머니가 해주신 쌀국수였는데 친정집 와서 마음껏 먹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이 씨의 아들들은 어느새 제 집인냥 베트남식 그물침대인 해먹에 누워 또다른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이 씨의 어머니는 오늘도 웃음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은 채 "사위가 정말 좋다"며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서도 서로 열심히 일하고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을 계속 꾸려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선희 씨 부부는 베트남에 머무는 동안 가족 모두와 함께 베트남과 캄보디아 경계지에 있는 관광지로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가족은 나라와 국경을 막론하고 모두에게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이다.

한국으로 시집 온 결혼이주여성들의 친정집과 친정마을, 그리고 친정나라는 그래서 우리에게도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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