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이주민 주도 시작
이제는 지역민도 함께 참여해

▲ 제주도 구좌읍 세화포구에서 열리는 벨롱장은 정성을 들인 독특한 아트상품들을 판매하면서 이주민과 지역민의 소통 공간이자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 제주도 구좌읍 세화포구에서 열리는 벨롱장은 정성을 들인 독특한 아트상품들을 판매하면서 이주민과 지역민의 소통 공간이자 관광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 싣는 순서 | 

1회_ 함께 만들어가는 공동체… 해남 모실장 
2회_ 신개념 문화장터 우리 손으로 만듭니다
3회_ 즐겁게 놀고 시도하자, 믿음 나누는 콩장
4회_ 도시에서 '농(農)'의 가치를 찾다
5회_ 누구나 예술가가 되는 곳, 리버마켓
6회_ 반짝반짝 상생의 아름다움 벨롱장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이제는 더 이상 얽매이긴 우리 싫어요…'

제주도 명소로 손꼽히고 있는 문화마켓 벨롱장은 '제주도 푸른밤'의 노래 가사처럼 지친 일상을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 제주도로 모여든 이주민들이 시작한 마켓이다.

벨롱장을 기획한 운영진 '꿈꾸는물고기(가명)' 씨는 지난 2012년 서울에서 제주도로 이주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며 바쁘게 살아왔지만 문득 '행복'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제주도 구좌읍에서 새로운 인생을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꿈꾸는물고기 씨에 따르면 그가 이주했을 당시에는 육지에서 제주도로 이주해오는 이주민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벨롱장이 열리는 곳이 제주도 구좌읍소재지인 이유도 이주민들이 장날이 되면 자연스럽게 구좌읍소재지인 세화리로 나와 모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주민들은 서울 등 도심지역에 살았던 이들이 많았고, 홍대 플리마켓 등 마켓을 접해봤던 경험이 있었기에 제주도에서도 재밌는 마켓을 열어보자는 뜻을 모았다. 반짝거리다는 뜻의 제주도 방언인 '벨롱벨롱'의 어감에서 벨롱장이라는 이름을 따왔다.

초기에는 플리마켓(Flea Market, Flea는 '벼룩' 이라는 뜻)이라는 말 그대로 헌옷과 사용하던 장난감 등 중고물품과 일부 수공예품, 농산물 등 다양한 품목이 판매됐다. 그런데 디자인과 수공예품에 감각을 가진 디자이너와 작가들이 각자 개성 있는 상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독특한 제품들에 세화리의 아름다운 해변 풍경이 더해져 관광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제주도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수공예품의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덕분에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 2시간 동안에만 '반짝' 열리는 마켓임에도 불구하고 벨롱장을 보기 위해 일부러 발걸음을 옮기는 관광객들이 점점 늘어났다. 덕분에 7개 팀에서 시작했던 벨롱장은 지난 2014년과 2015년에는 150여개 팀으로 불어났고, 현재는 참가팀을 줄여 평균 70~80개 팀이 참여하는 마켓으로 거듭났다.

벨롱장에 판매자로 참가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규칙만 지키면 된다. 자신의 이야기가 담긴 제품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이다. 판매자가 직접 그리고, 만들고, 제작한 물품 판매가 원칙이다 보니 평균 참가팀 70~80개 팀 중 80% 가량이 수공예품을 파는 부스다. 남은 20%는 제주도 농산물과 베이커리 등의 음식 부스이며, 벨롱장의 정체성을 아트마켓으로 잡으면서 중고물품 판매 부스는 받지 않고 있다.

벨롱장 판매자로 등록된 마켓 수는 400~500여개 가까이 되는데 육지에서도 가입한 뒤 제주도를 방문해 부스를 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판매자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SNS 인스타그램에 자신의 물품을 올리고 해쉬태그를 넣어 신청하면, 3명의 운영진이 새로운 판매자가 필요하다고 여길 때 새로운 판매자를 선정하는 형태다. 별도의 가입비는 없으며 마켓 참여시 참가비 2만원을 받는다. 모인 기금은 동제주종합복지관에 전액 기부해왔는데, 마켓 규모가 커지면서 주차 아르바이트 인건비와 보험 용도로도 일부 활용하고 있다.

꿈꾸는물고기 씨는 "벨롱장은 현재 수익구조가 있는 장은 아니다. 재미있는 일을 하며 행복해지기 위해 여는 장이다. 운영진은 별도의 인건비가 없고 일종의 봉사활동에 가깝다. 돈을 받아 얽매이고 내 삶에 섞여버리게 된다면 지금처럼 편안하고 재밌게 참여할 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며 "판매자들이 참가 물품을 기반으로 가게를 내기도 하고, 책을 쓰거나 방송에도 출연하는 경우가 있었다. 이들이 행복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게 나에게도 다른 형태의 행복이 되고, 벨롱장을 지속해서 여는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제주 내 마켓 늘어, 지원조례 제정
주체적인 삶의 고민과 맞닿은 곳

벨롱장에 참여하는 젊은 이주민들은 각자가 판매자이자 낯선 곳에서 함께 정착해가는 '친구'이다. 또한 최근에는 제주시민들이나 지역 주민들도 함께 벨롱장에 참여해 이주민과 원주민 간 교류도 활발해졌다. 초기에는 벨롱장 운영에 대해 지역민들이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봤지만, 벨롱장이 관광자원화 되어 지역상권에도 도움을 주고 지역민 참여도 늘어나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고 한다.

특히 벨롱장의 활성화와 함께 제주 곳곳에서 여러 마켓들이 운영되기 시작했다. 제주도의회는 의원발의로 문화장터 지원 조례를 제정하기까지 했다. 제주도를 알리는 문화상품이자 새로운 문화트랜드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지난 13일 방문한 벨롱장은 에메랄드빛 바다와 무척이나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세화포구를 따라 길게 늘어선 부스들에는 제주도의 매력을 담아낸 술잔과 장식품, 손뜨개 인형, 니트 모자·가방, 주방식기, 조각보 공예품, 다양한 악세사리와 그림, 핸드메이드 책 등 각자의 개성이 담긴 물품들이 풍성했다.

여기에 구좌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당근과 귤로 주스를 만들어 판매하는 점도 눈에 띄었다. 오전 11시 한적했던 세화포구는 금세 관광객들로 가득 찼다.

벨롱장의 물품들이 반짝이는 이유는 판매자들의 삶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왜 제주도에 내려왔는지,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등 끊임없는 질문과 맞닿아있다.

꿈꾸는물고기씨는 "시대가 변하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있다. 이는 우리가 어떻게, 뭘 하면서 살아야 하는 고민과 연관되어 있다. 벨롱장은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만 된다면 다양한 방식으로 재밌게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보여주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며 "서울에서 직장을 다닐 때 디자인 일을 했는데, 그 때는 다른 이들의 요구에 맞추어 무언가를 제작해냈다면 지금은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이야기를 판다. 벨롱장에서 손님들과 직접 조우하고 좋은 반응을 보여줄 때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벨롱장은 매주 토요일마다 열리지만 바닷가에서 진행되는 마켓이기에 1·2·11·12월에는 열지 않으며, 여름철인 6~9월에는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야시장으로 운영된다. 또한 세화오일장이 열리는 5·10·15·20·25·30일에 벨롱장이 겹칠 경우 마켓을 열지 않거나 장소를 이동하며, 기상 여건이 좋지 않을 때에도 열리지 않기 때문에 벨롱장 공식 SNS를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oOKaEdxxwRc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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