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주일(북일중앙교회 목사)

 
 

어느 날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이 아들과 손자와 함께 교회를 찾아 오셨습니다. 어린이·청소년·청년기를 보낸 고향과 교회를 둘러보고 싶다고 해서 모시고 왔다고 했습니다. 일명 고향 나들이였습니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랐던 터전인 집과 동네를 둘러보고, 논과 밭도 찾아가 보고, 어렸을 때부터 고향을 떠나기 전까지 다녔던 교회도 둘러보며 지난 세월의 흔적들을 찾아 추억을 되새기려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무엇이 저분들의 발걸음을 이곳까지 옮기게 했을까?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먼 길을 마다않고 이곳까지 온 이유가 무엇일까? 그분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먹먹하고 헛헛했습니다.

그 분들이 찾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풍요하고 편리한 세상, 돈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세상인데, 뭐가 부족하고 아쉬워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귀향! 귀촌! 귀농! 많은 사람들이 동경합니다. 은퇴하면, 늙으면 고향에 가서 소박하게 텃밭이나 일구며 여생을 살아야겠다고 꿈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맑은 물, 깨끗한 공기, 코를 파고드는 보드라운 흙냄새, 왁자지껄했던 지난날의 고향의 일상을 그리워하는 듯합니다.

계절을 따라 옷을 갈아입던 우리의 고향을 그려봅니다. 지천에 깔린 이름 모를 봄꽃들의 향연에 나비와 벌들의 군무는 아이들을 춤추게 했습니다.

동네 앞을 흐르는 개울과 뒷동산은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였습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을 키우는 최고의 학교였습니다.

담쟁이 넝쿨에 둘러쌓은 돌담과 골목길 돌아 나오는 집 안마당에 노란 열매 가득 안고 선 감나무 유자나무 은행나무는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했던 모든 이의 보물이었습니다.

밥을 짓는지, 소죽을 쑤는지 모락모락 피워 올린 연기는 굴뚝을 타고 나와 온 동네를 휘감고 돌아서 고즈넉한 농촌의 초저녁을 그려낸 멋진 동양화였습니다.

하루 종일 논밭에서 땀 흘리며 일한 농부는 발걸음을 재촉합니다. 자식들은 들어왔는지, 짐승들은 우릿간에 자리를 잡았는지, 널어놓은 곡식들, 빨래는 거둬들였는지 분주한 마음은 벌써 사립문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누렁이, 흰둥이 컹컹 짖어대고 꼬리를 흔들며 주인을 맞이하는 모습은 우리네 고향의 또 다른 멋이었습니다. 한여름 밤, 어스름한 밤을 틈타 서리를 작당한 아이들은 한 입 베어 문 참외·수박의 달콤함에 행복했습니다. 하늘의 별을 세고, 달 속의 토끼를 그리며 밤이 깊도록 꿈을 지어내는 시절이었습니다.

참외·수박 서리에 야단을 했지만, 다 내 자식이라 다독이며 그것으로 끝이었습니다.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을 건강하고 풍성하게 키워 준 고향이야기, 삶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네 고향은 쓸쓸합니다. 적막합니다. 텅 빈 곳간 같습니다. 사람의 온기는 스러지고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만 깊어갑니다. 발걸음 사라진 골목엔 찬바람이 세차게 불어옵니다.

세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몸부림치다 지치고 병든 우리들의 몸과 마음과 정신과 영혼이 위로 받고 치유 받고 회복할 안식처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며칠 전, 북일면 오소재 소공원(오기택공원)에 북일 지역 출신 가수, '고향무정'이라는 노래로 유명한 오기택 노래비가 세워졌습니다.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 아래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 있는지 산골짝엔 물이 마르고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오래 전에 만들어진 노래가 오늘 우리의 고향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정감이 가면서도 서글프게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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