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시인)

 
 

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고 AI가 진격해오는 취업시장에서 살아남기는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달달 외우기만 하는 공부, 공부 피터지게 해도 스카이 입학도 취업도 쉽지 않다. 취업한다고 장래가 안정적이지도 않다. 취업하지 못한 박사학위자는 사방에 넘쳐난다. 초·중·고 12년 동안 할 수 있는 노력 다 기울여 몇 명이나 기대하던 서울 상위권 대학을 진학했는지. 그 중 몇이나 든든한 직장을 잡았는지.

대학 이름보다는 전망이 보이는 학과를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들은 진즉 쏟아졌다. 공부하기를 재미있어 하는 학생이 아니라면 소질과 전망을 살펴 특성화고를 보내는 선택도 나쁘지 않다. 기업에서도 블라인드 면접이 늘어나면서 학벌의 위력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물론 아직도 한국사회에서는 대학 졸업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누구도 대학졸업장 없이 한국사회에서 대접받긴 어려운 건 아직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취업시장에선 스카이 같은 대학 이름보다는 실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요구하는 흐름으로, 미세한 전환이지만 대학 이름 만으로 만사가 결정되던 시기와는 다른 흐름으로 바뀌고 있다.

기죽지 않고 바르게 성장해야 할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를 자신감 죽이는 틀에 넣고 보낸다는 건 아깝고 슬픈 일이다. 학생의 긴 장래를 두고 보면 더욱 더. 바보 같다. 이해할 수 없다고 외국의 교육학자들은 한국 학부모들을 향한 조롱을 쏟아낸다.

이미 눈치 빠른 도시의 학부모들 중에는 특성화고를 선택하여 적성이 보인다 싶으면 취업을 위한 기능연마에 힘을 쏟게 하고, 대학을 보내야 한다 싶으면 특성화고에서 내신관리를 잘하는 게 웬만한 대학을 입학하기에도 인문계고 진학보다 불리하지 않다는 걸 안다. 대도시의 경우는 역전현상이 일어나 중학교 내신성적 30%~70%의 중위권 학생이 특성화고로 몰리고 인문계 고등학교엔 상위 29%까지와 71% 이하의 학생들이 진학하는 형편이다.

하위권 학생들은 특성화고를 진학하지 못해 인문계고등학교로 밀려가는 경우가 많아졌다. 평균입학성적은 인문계고등학교가 더 높을지 몰라도 합격자 커트라인은 도시권에선 특성화고등학교가 인문계고를 상회했다. 누구보다 안타까운 건 인문계고에 진학해서 소질도 적성도 없는 공부에 시달리며 공부 못한다고 기죽어가면서 3년을 보내고도 대학 진학에 성과를 낼 수 없어 상위권 성적자들의 내신성적 밑밭침이 되는 아이들이다.

해남에서 오래 근무하면서 느끼는 의문 중 하나는 소위 해남의 사회경제적 상층을 차지하는 학부모들이 관내의 학교를 보내려 하지 않는 거였다. 학부모들은 우선은 인문계 고등학교, 죽어라고 공부시키는 해남 관외의 학교들을 선호하고 특성화고를 지원하더라도 조금 더 이름난 관외지역을 선호한다. 또 학생의 성적이나 소질을 고려하지도 않는다. 난 무조건 내고장학교 보내기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거는 부모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다. 그러나 꼭 한 가지만은 묻고 싶다. 그게 자식을 위한 선택이요 아니면 당신의 체면을 위한 거요. 그걸 분명하게 묻고 싶다. 학생의 일생을 결정하는 중요한 선택을 학부모의 체면과 맞바꾸지는 말란 말을 하고 싶다. 체면보다 실리를 중사하는 흐름으로 바뀌는 세상을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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