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경도마을 김원호 씨
김정은 위원장 선물 받아

▲ 황해도가 고향인 화산면 경도마을 김원호 씨가 칠보산 송이버섯을 받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 황해도가 고향인 화산면 경도마을 김원호 씨가 칠보산 송이버섯을 받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

"황해도 벽성군 나덕면 자하리가 고향이에요. 하도 오래돼서 기억도 잘 안나지만 아름다운 산골에서 살았어요. 남으로 내려올 때 아내도, 딸도 못 데려오고 부모님과 동생들하고도 연락이 끊겼죠. 며칠 안 되어 다시 갈 수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화산면 경도마을 김원호(90) 씨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기념 선물로 보낸 칠보산 송이버섯을 지난달 22일 받았다. 6.25 한국전쟁 당시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이산가족이 됐기 때문이다.

김 씨는 수양산을 뒷산으로 둔 산골에서 대가족을 이루어 살고 있었다. 아내와 2살배기 딸을 뒀고, 동생 6명이 있었다. 하지만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각 형제간의 장남들인 6촌 형님 2명과 대피했고, 3.8선을 넘어 이남했다가 다시 올라온 친구를 만나 남쪽으로 내려왔다. 당시 산에 피난해 있던 20여명이 한꺼번에 넘어왔다고 한다.

당시 김 씨의 할아버지는 이남으로 넘어가게 되면 전라남도로 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3.8선 곁에 있지 말고 먼 곳으로 가라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말씀 때문인지 처음에는 섬 2개를 거쳐 연평도에 머물렀으나 다시 목포로 가게 됐고 신안 하이도로 배치받아 그 곳에서 4년을 살았다. 지난 5월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 김춘열 씨와 만난 곳이다. 아내 역시 이북이 고향인 실향민이었다.

김 씨는 해남으로 온 뒤에도 성실히 일하며 화산면 경도마을에 터를 다져나갈 수 있었지만 마음 속에는 늘 고향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던 가족들에 대한 생각이 절실했다. 지난 1971년 대한민국 적십자사가 이산가족찾기 운동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남북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왔고, 가족을 찾는 영상편지까지 남겼지만 단 한번도 최종 대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김 씨와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 마을 지척에서 살았던 6촌 고 김홍구 씨도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해왔으나 지난 6월 15일 92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별세 후 일주일 뒤, 올해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연락이 와 가족들은 더욱 비통해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래준 것이 칠보산 송이버섯이다. 김 씨는 크고 굵은 송이버섯 7개를 받았는데, 마치 고향에 간 것처럼 기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특히 추석 전 송이버섯을 받게 돼 온 가족이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가졌다.

김 씨는 "송이버섯을 보니 고향이 생각나서 고마웠다. 고향에 다시 가고 싶고 가족들을 보고 싶다는 마음은 말할 것도 없다"며 "통일이 금방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산가족 상봉이나 편지 연락을 주고받는 것이라도 서둘렀으면 한다"고 말했다.

아들 김병욱 씨는 "송이버섯을 받아 깜짝 놀랐다. 가족들도 설레고 기쁜 마음이 들었는데 아버지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싶다"며 "송이버섯은 돌아가신 어머니 산소에도 올렸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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