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변호사)

 
 

'일본 중서부 이시카와현 하쿠이시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2005년 4월, 시장은 공무원들에게 과제를 던져주었다. 1년 안에 농작물 브랜드화를 추진하라는 '메아리 계획'이 바로 그것이었다.

"너 같은 놈은 농림과로 보내버리겠어" 한참 전 그렇게 해서 농림과로 쫓겨 온 다카노 조센이 그 일을 맡게 됐다. '쌀은 누가 먹으면 브랜드가 될 수 있을까?' 먼저 황실의 문을 두드리기로 했다. 황실을 담당하는 궁내청에 근무하는 하쿠이시 출신을 찾았다. "천황 폐하께서 우리 쌀을 드시면 어떨까요?" 잘 풀려나간 듯 했다. "이젠 우린 성공했어. 상표에는 천황가의 문장인 국화를 쓰자" 다 된 줄 알고 야단법석을 떨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천황의 밥상에 올라가는 쌀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바꾸기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천황에서 교황으로 방향을 돌렸다. 하쿠이시에서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되는 곳은 다랑논 지대였다. 그 지대의 이름이 미코하라(神子). 이를 영어로 번역하자면 '신의 아들이 사는 산' '신의 아들'이라고 하면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니까 미코하라는 '그리스도가 사는 산'으로 번역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잠시 즐거움에 취했다 깨어나 당장 로마 교황청으로 편지를 보냈다. 얼마 후 로마에서 연락이 왔다. "교황께 편지를 보내셨더군요. 일본의 교황청 대사가 당신에게 연락을 할 겁니다" 그해 가을, 시장과 마쿠하라 이장 그리고 다카노 조센은 햅쌀을 싸들고 도쿄로 향했다. "신의 아들이 사는 산에서 재배한 맛있는 쌀을 교황님께 맛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미코하라라는 마을은 500명 정도가 사는 작은 마을이지요? 우리 바티칸도 채 800명이 안 되는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입니다" NHK 등에서 '교황이 먹는 쌀'이라며 기사를 내줬다.

디자인도 중요했다. 처음에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루이뷔통과 협업하면 재밌을 것 같아서 제안했는데 거절당했다. 차선책으로 에르메스 스카프를 디자인한 캘리그래퍼 요시카 주이치 선생을 찾았다. 하쿠이 시에서 별로 멀지 않은 후쿠이에 거주하고 있어서 조건이 좋았다. "저희는 사례금 대신 쌀 30킬로그램밖에 드리지 못합니다. 그래도 '노토 미코하라 쌀'이라는 저희 상품의 이름을 써주실 수 없을까요? 선생님의 글씨가 마을을 구할 수 있습니다" 글자를 받을 수 있었다.

'교황이 먹는 쌀'이라는 타이틀, 에르메스의 캘리그래퍼를 기용한 글자와 에피소드. 이것만으로도 스토리텔링이 가능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멈춰선 안 되었다. 다른 지역도 쌀 브랜드화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코하라 쌀로 술을 만들기도 했다. 주조 회사와 협력해서 720밀리리터에 3만3600엔인 일본 최고의 술 '마레비토(客人)'을 내놓았다. 맨 먼저 세계일류 소물리에인 다사키 신야 씨에게 맛을 봐달라고 청했는데, 그는 일본 술로서 '마레비토'가 일품이라고 평가해주었다. 도쿄 외신기자클럽으로 그 술을 가지고 가 소개했다. "이렇게 맛있는 일본 술은 마셔본 적이 없어요" 마코하라 쌀로 빚은 술은 외국인들에게 크게 칭찬받았다. 이런 방식으로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역사상 최연소로 미슐랭의 별 세 개를 획득한 프랑스 요리계의 거장 알랭 뒤카스의 팀이 교황의 쌀이라는 소문을 듣고 직접 방문했다. 다랑논에 가보자 더니 논에 들어가 흙을 파서는 혀로 핥아 먹는 것이었다. 검증이었다. 마침내 프랑스 요리에 어울리는 정종을 만들었다. 쌀로 만든 와인이었다.

얼마 전 출간된 다카노 조센의『교황에게 쌀을 먹인 남자』를 요약한 글이다. 해남 군청 어딘가에도 이런 야심과 상상력을 가진 공무원이 숨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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