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불편함을 불러온다. 불안함을 느끼면 안절부절 하지 못하고, 쉽게 흥분하며 어떤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어진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며, 때로는 가슴이 마구 뛴다. 몸이 경직되고 식은땀을 흘리기도 예민해져 평소에 일상적으로 지나치던 것에 대해서 경계를 하게 되는 등 생각·행동·신체감각 변화가 본능적으로 일어난다.

한편 불안함은 인간 생존에 있어서 꼭 필요한 반응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원시인이 맹수와 마주치는 위험에 처하게 되면 불안감이 엄습한다. 불안은 자율신경계 교감부를 활성화해 응급, 위험 상황에 대처할 수 있도록 신체 자원을 동원한다. 맹수와 맞서 싸우든지, 아니면 도망을 치든지 그에 필요한 에너지를 동원하여 예민하고 민첩하게 반응하도록 하기 때문에 생존에 꼭 필요한 반응이다. 이러한 위험에 대처방식은 인간 유전자에 각인되어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전해졌다. 미국의 생리학자 월터 캐논(Walter Cannon)은 이것을 '투쟁-도피 반응'이라 이름 붙였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양적 성장과 경제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이제는 맹수가 아닌 폭등하는 집값과 날로 심화되는 소득 격차, 불확실한 경제·정치 상황과 재난 상황 등이다.

이런 사회적 불안을 부추김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지배자들도 있다. 사회적 불안을 임계치까지 최대한 끌어 올림으로써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는 국민들이 복종하게 만드는 전략이다. 불안을 최대한 증폭시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동서양 독재자들이 가장 선호한 통치술이었다. 불안과 공포는 사람들을 침묵시키고 늑대 앞에서 겁먹은 양처럼 순치시킨다.

우리는 식민시대와 군사독재정권, 지난 10여 간 퇴행하는 역사 속에서 이미 경험했고 이를 극복하고자 한마음으로 촛불을 들었다. 촛불의 요구는 불안한 사회에서 국가는 비바람과 맹수의 위험에서 국민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집이어야 하고 국가정책은 국민 불안감을 해소해 주고 희망을 안겨주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독일의 사회학자 하인츠 부데는 '불안의 사회학'이라는 책에서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했던 대공황 시기 루스벨트 대통령은 미국인들 얼굴이 "길 잃은 아이들처럼 그들의 눈에는 겁먹은 시선이 어려 있었다"라고 말했다. 루스벨트는 '불안의 제어'를 공공의 행복과 사회통합을 위한 주요 척도로 삼았다고 쓰고 있다. 더불어 그는 다음과 같이 국가가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복지국가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교육을 해주고 과도하게 빚진 개인과 가구에 조언을 해주며 소외계층 출신의 아이들에게 결핍을 보완 할 수 있는 교육을 해주는 것을 목표로 설정한다. 이러한 모든 노력은 순전히 가난이자 사회적 소외, 그리고 차별의 퇴치만을 중요시하는 게 아니며, 열에서 제외되거나 권리를 박탈당하고 차별대우 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퇴치하려는 것이다"

원인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함은 두려움을 불러온다. 우리는 불안의 진원지를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불안 상황에 용기 있게 대처할 수 있고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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