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관광시설 이미 폐허화
유바리 재정파산 직접원인

▲ 작지만 의미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행복의노란손수건' 영화로케장소는 관광명소로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 작지만 의미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행복의노란손수건' 영화로케장소는 관광명소로 사람들이 꾸준히 찾아오고 있다.
▲ 그렇지만 수십억엔을 투자한 관광시설은 폐허가 되거나 녹슨채 남아 있었다.
▲ 그렇지만 수십억엔을 투자한 관광시설은 폐허가 되거나 녹슨채 남아 있었다.
 
 

| 싣는 순서 | 

1_ 유바리의 우울한 현실
2_ 재정파탄의 최대 피해자는 시민
3_ 유바리 날개없는 추락 원인
4_ 관광은 하드웨어가 아닌 스토리텔링
5_ 지역의료와 복지 - 유바리모델의 진실
6_ 지역에 희망은 있는가 - 지역재생의 길
7_ 유바리의 교훈과 우리의 과제

유바리는 북해도의 중앙부 공지지방 남쪽에 위치해 삿포로에서 60여㎞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면적은 763.2㎢로 해남군 면적의 75%에 상당하며 그중 91%는 산림이 차지하고 있다.

평균 230m의 구릉경사지로 시내중심부를 관통하여 흐르는 유바리강(夕張川) 유역을 따라서 Y자 형태로 시가가 형성되어 있다.

유바리를 취재하면서 제일 어려 웠던 점은 교통편의 문제 였다. 자가용이 없으면 움직이기 어려웠다. 렌터카도 없고 택시는 전화로 호출하면 20~30분 후에 왔다. 하루 다섯 번 시내를 순환하는 버스는 배차간격이 한시간 반에서 두시간이라서 시내 곳곳을 살펴 볼겸 차라리 걷는 것이 나았다. 유바리에서 하루 12㎞ 정도를 사흘 연속 걸었더니 얼굴이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렸다.

거대관광시설 이미 폐허화
유바리 재정파산 직접원인

테마파크였던 석탄 역사촌은 "유바리 희망의 언덕" 이라고 쓰여진 커다란 굴뚝과는 달리 황량했다. 굴뚝 옆에는 시설물을 철거한 잔해가 쌓여 있었다. 옛날 대관람차가 돌아가고 놀이시설이 가득했을 테마파크에는 시설물이 모두 철거되고 아직 남아있는 레스토랑이나 건물들은 폐허로 남아 있었다. 은편의 가족휴양시설은 유리창이 모두 깨진채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한 석탄박물관은 전시물이나 지하의 채굴갱도를 박물관으로 꾸며 놓았다. 직접 막장의 탄층과 석탄 채굴 방법의 시대적 변화와 기계들이 실제로 가동되어 나름 볼만 했었다. 그러나 평일 오전에 관람객은 단체 관람객 포함해 10여명 뿐으로 이렇게 해서 운영이 될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래도 주말에는 일반 관광객들과 학생들이수학여행으로 찾아오는 편이라고 했다지만 운영경비 대비 수입을 어떻게 증가시킬 것인가는 발등의 불처럼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였다.

황량한 석탄 역사촌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유바리 희망의 언덕' 이라 표기된 커다란 굴뚝 옆의 폐기물 잔해부터 치우고 주변에 나무를 심거나 꽃밭을 조성하는 자연친화적 복원과 유바리 역에서부터 석탄박물관 까지를 석탄으로 특화한 테마관광에 집중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의 성지로 자리매김한
'행복의 노란손수건' 촬영지

'행복의 노란손수건' 추억광장은 1977년에 개봉되어 제1회 일본 아카데미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을 비롯해 다수의 영화상을 수상한 '행복의 노란손수건(감독 山田洋次) 의 주인공 부부가 재회하는 라스트씬을 찍은 영화로케 장소이다.

'행복의 노란손수건"은 홋카이도를 무대로 찍은 로드무비이다. 교도소에서 출소한주인공은 각각 다른 사유로 실연해 홋카이도에 여행온 남녀들과 어울려 함께 여행을 하게된다. 일행의 빨간색 패밀리아 자동차로 여행 중에 주인공의 비밀을 알게 된다. 고아로 자라 광부였던 주인공은 슈퍼 계산원인 여성과 만나 행복한 신혼생활을 보낸다. 아내의 임신소식에 뛸 듯이 기뻐하지만 아내가 힘든 일을 하다 유산을 하고 만다. 병원에서 아내가 5년 전에도 유산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홧술을 먹고 불량배와 시비가 붙어 그를 죽이게 된다.

교도소에 수감된 주인공은 면회온 아내에게 아직 젊으니 더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며 이혼을 요구한다. 6년 후 그는 출소하여 세사람과 여행하기 앞서 "만일 혼자 살면서 나를 기다렸다면 고이노보리 깃대에 노란손수건을 매달아 놓고 아니라면 나는 다시는 유바리에 나타나지 않겠다"라고 아내에게 엽서를 보냈노라 말한다. 기어코 혼자서 가겠다는 주인공을 앞세워 마을입구에 도착한 일행은 깜짝놀라 탄성을 지른다. 깃대에 수십장의 노란손수건이 펄럭이고 있었다.

주인공은 아내의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가고 실연으로 괴로워하던 남녀 두 사람도 유바리의 야경을 배경으로 서로 손을 굳게 잡고 입맞춤하며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는 줄거리이다.

영화세트장은 넓지도 않고 당시 탄광주택을 재현한 연립판자집으로 지어진 광부사택 5채와 깃대, 화장실이 시설물의 전부였다. 내부에는 영화 속 빨간색 패밀리아 자동차와 주인공의 집이 꾸며져 있고, 여기에서만 볼 수 있는 감독 인터뷰 영상자료와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세트장의 한칸을 행복의 성지(聖地)라 이름 붙여 노란메모지에 방문자들이 행복을 생각하며 남긴 메모를 붙여 놓는 공간이었는데 사방과 천정에 겹겹이 노란 메모지가 가득했다. 들어가는 순간 탄성이 나왔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려서 메모를 하면서 추억을 남기고 갔을까?

많은 돈을 들였지만 황량하고 애물단지가 된 테마파크보다 걸어서 5분 이면 돌아 볼수 있을 정도로 규모는 작지만 의미가 있고 삶의 가치와 추억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조그만 세트장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일산일가(一山一家)'로 불리는 산이나 탄광에서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가족이라는 강한 연대의식이 살아있었던 옛날의 공동체성에 대한 그리움이,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심리적 황폐함에 시달리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관광자원이나 시설은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미와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

 

| 유바리에서 만난 사람들 |

 
 

유바리시의회 의원 구마가이게이꼬(熊谷桂子)

일본 공산당 소속의 유바리시의회 3선 의원인 구마가이 게이꼬 씨는 '젊은 사람도 나이든 어르신도 안심하고 살아가는 유바리를 만드는 것'이 의정활동의 목표라고 말했다.

멀리에서 지역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찾아온 온 외부인의 눈에 유바리가 어떻게 보였는지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오히려 석탄박물관이나 테마파크와 관련해서 이런 저런 것을 내게 물어왔다.

그녀는 평화와 격차없는 사회, 그리고 방사능오염과 건강피해를 가져오는 원자력 발전 축소를 주장하면서 유바리 재생 시민회의 운영위원, 유바리 메론과 유바리강을 지키는 시민네트워크 사무국, 유바리역사와 문화를 배우는 모임 부대표등 시민단체 활동경험을 살려 주민들과의 생물문제와 꼭 해결해야 하는 과제에 초점을 맞추고 지역주민들과 접촉면을 넓혀가고 있었다.

그녀는 "유바리가 파산하여 지역이 침체되고 지역주민들이 낙심해 있을 때 3·11 동일본 대지진피해를 입은 지역아동들을 유바리 스키장에 초청하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일을 지역주민들과 함께 계획하고 추진했을 때가 보람있었다"면서 "어려울수록 서로 돕고 가진 것을 내어주는 공동체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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