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에서 독립만세운동 참여
네 번째 신청만에 공적 인정

▲ 고 이호상 씨.
▲ 고 이호상 씨.

삼산면 신흥리 출신 고 이호상(1890.11.7~1971.01.11.) 씨가 독립운동에 참여한 공을 인정받아 2018년도 광복절 계기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자로 선정됐다.

고 이호상 씨는 원적 해남군 본면 창리, 본적 삼산면 신흥리로 해남 내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김동훈(1986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씨, 선화인(2002년 대통령 표창), 안장길(2014년 애국장), 이준탁(1995년 대통령표창), 김상철(1990년 애족장) 씨와 막역한 사이였으며 나라의 독립을 소망한 일들을 함께 이야기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호상 씨는 1919년 4월 6일 해남읍 보통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 시위에 참여했고 이후 해남장이 열리던 11일 김동훈 씨의 주도로 해남시장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해 다시 독립만세를 외쳤다.

김동훈 씨가 붙잡혀간 이후에도 이호상 씨는 홍교다리까지 진출해 남은 인원과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결국 일본 경찰에 끌려가게 됐다. 17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취역형 60일을 언도받아 60대의 태형과 고문을 받고 풀려났으나 후유증으로 오랜 세월 투병을 해야 했다.

이호상 씨는 지난 1971년 1월 11일 눈을 감았으나 그동안 독립운동을 했었던 공적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공을 인정받지 못하다가 지난 8일 독립유공자 서훈 대상자로 선정됐다.

고 이호상 씨의 아들 이운식(76)씨는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시다가 고문을 받으시고 풀려나셨는데 함께 고문을 받은 안장길 유공자분은 목숨을 잃으셨지만 아버지는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기셨다"며 "하지만 늘 몸이 아프셔서 일도 제대로 하실 수 없었고 부모님은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일본의 감시나 생계 등의 이유로 묻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자동차나 대중교통이 귀했던 시절이어서 삼산면과 해남읍을 오가는 데에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던 분이다. 뒤늦게나마 유공자 신청을 해왔는데 네 번째 신청에서 선정됐다"며 "아버지에게 죄송스럽고 아직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이 있다면 하루 빨리 처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고 이호상 씨의 대통령표창은 오는 15일 유족 이운식 씨가 광주광역시장으로부터 수령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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