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새벽에 배달된 경향신문을 오후에 읽었다. 국회에서 계류 중인 부정환수법(공공재정 부정청구 금지 및 부정이익 환수 등에 관한 법률(안))이 빨리 국회에서 통과되기 바란다는 기고문을 읽는데 어둑해졌다. 저녁밥을 지으러 부엌으로 갔다. 담가 놓은 오이지를 얇게 썰어 갖은 양념을 넣고 조몰락거리다 비빔밥이 떠올랐다. 갓 지어낸 밥을 양푼에 퍼 놓고 무쳐 놓은 오이지와 잘 익은 차가운 열무김치와 고추장, 연한 미나리와 참기름을 넣고 비벼 그대로 식탁 위에 올려놓고, 아침에 먹고 남은 된장국을 데워 대접에 떠놓았다.

바로 위의 형과 아홉 살 터울이 지는 막내아들이 고등학교 기숙사로 들어간 후로 호젓하게 남은 부부의 저녁은 식사는 물론 시간조차 단조롭다. 농번기가 끝난 남편은 소파에 편하게 누워 아침에 읽다만 조간을 읽는다. 대학이 종강을 하자마자 실업자가 되는 나는 강의 마무리인 성적에 관련된 일을 하다 머리가 복잡해지면 두세 권의 책을 싸들고 도서관에 가거나 남편을 꼬드겨 매운 닭발을 파는 단골집으로 가서 한잔한다.

밤 느지막이 해남천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나오는 우리 집은 올해 초 입주를 마친 아파트다. 대부분의 아파트처럼, 이른 밤 시간에 꽉 차서 근처 여기저기에 차를 세워야 하는 넉넉지 않은 주차장이 있는데 건물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는 장애인 주차구역이 있다. 낮엔 택배나 다른 배달 차량이 잠시 머물지만 밤에는 항상 비어 있다. 장애인으로 등록된 입주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입주자 밴드에 사진 한 장이 올라오면서 벌인 토론(?)의 결과이다.

대부분의 가구가 입주한 작년 10월 하순에 밴드에 사진이 한 장 올라왔다. 장애인 스티커도 붙이지 않은 차가 장애인 주차 구역에 주차된 사진과 함께 "아무리 주차공간이 부족하더라도…" 라는 글이 올라왔다. 약간의 갑론을박이 있었지만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장애인 주차구역은 꼭 필요한 사람을 위한 곳이라 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이니 지킬 수 있는 건 지켜주고 싶네요"라는 댓글이 올라오면서 상황이 종료되었다.

오늘도 비어 있는 장애인 주차구역을 보면 우리 이웃이 좋다. 배려와 존중과 공존, 그리고 평등의 민주주의 가치 실현이나 생활 민주주의 같은 거창하고 멋있게 포장하지 않아도 장애인 주차구역을 비워 놓으면서 우리는 그것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금도 여느 주차장이든 장애인 주차 구역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세워져 있는 차를 보고 안타까운 때가 참 많다.

'부정환수법' 이란 글자 그대로 부정으로 받은 나랏돈을 되돌려 받겠다는 것이다. 실업급여나 복지급여 등을 예로 든 걸 보니 법으로 제재를 가할 만큼 자주 일어나는가 보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입법 담당자인 국회의원들이 특별 활동비를 개나 소나 받아서 아무데나 썼다는 뉴스를 심심치 않게 듣는다. 남의 눈 속의 티는 보고 제 눈 속의 들보는 보지 못하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 같아도 나랏돈은 정당하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나랏돈이 눈멀었다 해도 그게 절실히 필요한 누군지 모를 내 이웃의 몫은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장애인 주차구역이 꼭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지 쓸 수 있게 아무나 주차하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함께 잘 사는 건 힘들고 어려울지 모른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 않을까?

참인간 노회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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