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옥(해남공고 교사)

 
 

관내 관공서에서 팀원과의 갈등 끝에 팀장이 팀원의 뺨을 때린 뉴스를 본 적 있다. 학생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인데, 대체 무얼 어떻게 했길래. 여자들끼리 직장 내에서 뺨을 치게 되었을까. 사람들의 입방아는 한참 이어졌다. 온라인에 오른 뉴스토막이라 사건을 자세하게 알 수도 없었지만 성인을 폭행으로 대하는 건 무조건 잘못이라는 생각에 이의를 다는 이들은 없다. 갈등해결방법으로 폭력, 그것도 사적인 폭력을 사용한데 대해선 우리 사회의 모두가 부정적이다.

'내가 그놈을 주먹 한방으로 해결해버렸다'는 무용담이 많았던 시절이 있었다. 직장이나 사회생활에서 그놈의 형편없는 행동거지가 스토리의 전편에 깔려 있기에 사람들은 쉽게 가해자를 용감하다 손들어주었지만 그 스토리의 전편이란 게 이미 힘센 가해자의 편에서 모아지고 편집된 것이었음을 못 본 체하고 넘어간 거였다. 맞은 사람의 입장 보다는 가해자의 용기를 더 받들던 시절, 사람간의 갈등 해결은 무조건 폭력이었던 시절에 살았던 적이 있다. 우린 이제는 거기서 빠져나왔고 성인의 세계에선 폭력의 배제는 거의 정착이 되었다. 갈등구조를 찾고 해결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갈등 해결에 에너지와 시간을 쏟는 것을 비생산적이라 보는 가해자는 잘못 이전에 너무나 낡은 사람이다.

얼마 전 관내의 초등학교에서 교사의 지도를 거부하고 끝까지 방해하는 학생을 때리고만 선생님 기사를 보았다. 기사만으론 자세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교사는 머리 끝까지 화가 났고, 어떻게 해도 학생은 지도에 불응하고 교사를 향한 학생의 야유와 조롱은 그치지 않았을 거라 추정한다. 교권이 추락하는 이런 풍토에서 더 이상의 근무는 의미 없다고 학교를 떠나는 교사들도 있다.

인격적으로 다 큰 성인이 쪼무래기 학생들하고 감정싸움이나 벌인다고 손쉽게 이야기해선 안된다. 자기가 낳은 자식, 서너살짜리 아이들과도 감정싸움과 질긴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은 아이를 패고 마는 부모들의 경우는 흔하고도 많다.

학생들끼리 모여서 교내 교사 학생간 충돌을 이야기하면 그 교사는 형편없이 나쁜 사람이 되지만 교사끼리 모이면 그 학생이 천하에 싸가지 없는 놈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입장에 따라 사건의 평가가 아주 달라진다. 늘 거꾸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같은 상황이라도 약자인가 강자인가에 따라 적용기준이 달라져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금도 벌어지는 각종의 교권침해사례에 피눈물을 흘리는 교사들은 많다. 그래도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교육을 포기하더라도 폭력은 안된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선 모두가 동의하겠지만 인격을 침해하는 폭력을 동원해서 얻을 수 있는 교육의 효과는 인정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매질하는 것이 다반사이던 시절 부끄럽지만 나도 학생을 자주 때렸다. 이제야 반성한다.

70년대 박정희의 폭력이 극에 달했던 시절에 학교는 학생들에게 폭력을 전달하는 기구였다. 그 시절에, 그 시절에 이어자란 어른들이 아무래도 폭력에 더 둔감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한다. 그 시절에 만들어진 학교의 틀이 완전하게 바뀐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세상과 아이들은 바뀌었다. 자기 자식에게 종아리를 치는 부모라도 실형을 받는 세상이다. 누구에게라도 어떤 경우라도 폭력은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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