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채(문화관광해설사)

 
 

임진왜란하면 이순신인데, 나는 여기서 우리 해남 민초들의 역할은 어떠했고, 명량대첩의 공적의 반은 우리 해남 선조들에게 줘야 되지 않을까? 라는 소박한 생각에서 출발을 해보고자 한다. 정유재란이 1597년에 일어난 싸움이니까 장장 약 500년이 지난 지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시민들의 촛불혁명으로 새 시대의 새 물결로, 새로운 지도자를 맞이 하였고 한치 앞을 볼 수 없었던 남북관계가 순 방향으로 힘찬 물줄기를 돌리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시대가 요구 한 것은 위대한 한 영웅이 아니라 우리 민초들의 이야기가 생활이 되고 민초들의 중심이 되는 그런 시대가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묻혔던 향토사학도 발굴하면서 우리 해남의 위대함을 재발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거의 모든 이들은 명량해전을 이순신이란 한 장군의 위대함에 극찬을 아끼지 않음을 보면 해남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참 자긍심을 느끼기도 한다. 과연 우리 해남은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한 장수에게 단순히 울돌목이라는 지역 하나만을 내주고 과연 해남에는 별볼일 없는 촌부 무지랭이들만 살고 있었을까? 부산에서 추앙받고 계신 명량대첩의 이순신의 길라잡이 옥천 대산리의 정운 장군, 가성리의 박란 장군, 윤장군, 김장군, 등등 수없이 많은 훌륭한 장군들도 계셨고, 우수영의 강강수월래와 어우러진 우리 민초 특히, 부녀자들의 전래된 수많은 이야기, 신방리의 노적봉과 강강수월래 이야기, 간직하고 살아온 우리들이 아닌가.

울돌목 싸움에서 크게 승리하여 끝나는 전쟁인 줄 알았는데 다시 왜구들이 마을 들을 초토화시킨다니 싸우다 몰사한 옥천 만의총이야기, 위씨 부인의 눈물나는 남편의 목을 잘라 장례지낸 이야기, 송지 미황사 스님들과 농민들의 의병 모으는 송지진법군고는 우리 해남선조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은 아니었을까?

송지 박승룡 선생님이 약 20년동안 연구하신 어란여인의 이야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럼 그것들은 사료가 빈약하다고 해서 무시되어져도 괜찮을까? 논개보다 더 논개다운 어란여인 김씨, 우리 민초들도 참 참 훌륭하다고 본다.

그래서 결론에 도달한 것은 그것이 아직은 정사에서 인정 안해준대도 우선 전국 단위의 창작 뮤지컬화 해서 해남의 어란을 한번 알리고 싶었다. 해서 내 동생이 대표로 있는 '극단 신시'에 박선생님의 소중한 연구 책 한권을 보내서 검토해 보라고 보냈다. 우리 해남 민초들의 이야기들이 살아날 수 있도록 해야함을 느낀다. 나라사랑에는 문무가 따로 없고, 민초들의 소중한 문화유산들도 이해하고, 찾고, 보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역사 문화가 웅장한 해남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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