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34조 개정해 농민도 즐겁게 주권 행사하게'
황은희(주부)

 
 

5월 중순부터 6월 하순까지 우리 집 아침은 일어나자마자 누룽지에 밥 한 숟가락 더 얹어 레인지에 올려놓는 것으로 시작한다.

알타리 김치 몇 조각과 양파장아찌 무침을 접시에 담아 놓으면 세수를 마친 남편이 곤한 얼굴로 식탁에 와 앉는다. 어제 컴컴해서 흙투성이로 돌아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거품 일며 넘칠락 말락 끓고 있는 누룽지에선 고소한 냄새가 난다. 대접에 반이나 되게 떠주었는데도 덜어내라는 남편에게 그냥 먹으라고 불퉁하게 말한다.

씹는지 마는지 입놀림이 더디다. 보고 있으면 속 터지지만 깨작거려도 다 먹으니 다행이다. 차 열쇠 챙겨 들고 모자 눌러 쓰고 어둑한 아침에 남편이 나간다.

그는 농민이다.

지방선거엔 기초의원에서부터 도지사까지 뽑을 사람도 참 많다. 공개 선거 운동이 2주로 한정되어 있어서 후보들은 온힘을 다해서 자신들을 알려야 한다. 그러나 유권자는 괴롭다. 수십 대의 차량이 선전 노래 및 문구를 틀고 돌아다니니 하루내 귀가 따갑다.

집밖을 나서기만 하면 10장 이상의 명함을 받을 뿐만 아니라 모바일을 이용한 선전전도 대단해서 귀찮다. 그러나 지금은 남의 입을 빌어 내 처지를 알리고 권리를 요구하는 시대다 보니 가장 적합한 사람을 찾기 위해서 이 시끄러운 축제를 참는다. 그러나 이 난장판에서 철저하게 소외받는 사람들이 있으니 농민이다.

농민은 지방선거 기간에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허리 굽은 아짐은 새벽부터 손이 부르트게 마늘을 캐러 나간다. 찬물에 밥 한숟가락 급히 말아 점심 먹고 또 나가 깜깜해서야 캐리어 끌고 돌아온다. 주인 발소리에 꼬리 살랑거리는 대문 앞 백구가 반갑다. 마늘 캐고 양파 캐고 못자리하고 논갈이해서 모심는 시기가 지방 선거 시기와 딱 맞물린다.

공약을 살펴보거나 들을 시간도 없다. 저녁엔 밥숟가락 놓자마자 잠이 들면 새벽이다. 사람만 보이면 어디라도 마다않고 찾아와 고개 숙이는 선거꾼들이 성가시다. 부엌의 부지깽이도 한몫 거든다는 농번기니까.

물리치료 받는 노인들로 붐비던 면단위 동네 병원들도 한산한데 여당의 한 대변인은 투표로 대한민국이 주권재민이라는 것을 보여 달라며 그 선택이 우리의 삶과 아이들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머릿속에 농민이 있을까?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헌법 제2조) 대한민국의 주권은 농민에게도 있고, 농민은 대한민국 국민이다. 주권재농민까지해야 진정한 주권재민이다.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선거권을 가진다'(대한민국 헌법 제24조) 이는 국민의 권리이며 의무다. 농민도 대한민국 국민이다.

꼭두새벽에 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이 처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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