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故 천임식 作>
▲ <故 천임식 作>

지난 1980년 5월. 현재 불교대학이 있는 곳에는 제법 큰 절이 있었다. 그날은 석탄일 행사로 아침부터 절집이 분주했다. 무슨 일인지 수성리 신작로에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정오쯤 되자 승려들은 시민군이 준비한 트럭에 마이크와 확성기를 설치하고 가두 행진을 도왔다. "전두환은 물러가라! 김대중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듣고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왔다. 광주에서 내려온 시민군은 옛 경찰서 상무관 무기고에서 총기를 탈취해 삼일탑네거리에 집결했다.

당시 금성여객 터미널인 전 광주은행 터는 1919년 4월6일 해남에서 일어난 3.1만세 운동을 기념해 삼일탑이 세워진 후 '삼일탑네거리'로 불렀고, 해남 시민항쟁의 기점이자 상징이었다. 삽과 쇠파이프를 든 성난 민중과 총을 든 시민군은 이내 트럭과 버스에 올라타 "광주로 가자!"고 외쳤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5학년이던 나는 처음 본 광경에 심장이 멈추는 듯 했다. 전쟁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아찔한 순간이 내 어린 시절 목격한 5월의 기억이다.

20여 년의 세월이 지난 후 우리지역 주간신문에서 나는 그때 장면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들을 보았다.

사진 속에는 버스에 몸을 싣고 시위를 하던 시민군의 모습과 그들에게 나눠줄 음식을 준비하는 해남읍교회 신도들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사진을 찍어 기록에 남긴 사람이 누굴까?" 하고 몹시 궁금했는데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는 해남에서 활동한 사진가 천임식이다. 지병을 앓던 그는 냇가 징검다리 건너기도 버거웠다고 한다. "시위현장을 촬영하자 군인들이 다가와 카메라를 빼앗고 그를 끌고 가려다 바람이라도 불면 날아갈 것 같은 병약한 사람인지라 훈계하여 보냈다"는 차마 웃지못할 이야기를 사진협회 원로회원에게 들었다. 그는 주어진 일에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의식이 깨어있는 사람이었다고 그 원로는 회상했다.

'해남의 5월'을 기록한 사진가 천임식은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지난 2004년 58세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그가 남긴 여운은 여전하다. 그는 사람들의 일상과 주변의 것들을 마음으로 담아낸 성실한 기록자였다. 그의 유작을 보며 우리는 군부독재와 맞서 싸운 지역민의 용기를 오늘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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