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주일(북일중앙교회 목사)

 
 

37년간 아비 없이 살아온 딸의 상처와 아픔을 가슴으로 안아준 대통령의 모습은 2017년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식에서 국민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감동스런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1980년 5월 21일, 석가탄신일. 동네 앞 도로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을 때, 갑자기 들려온 총소리, 하늘과 땅을 흔들었던 총소리에 비포장도로를 연이어 달리던 버스 2대가 희뿌연 먼지를 뒤집어쓰고 힘없이 주저앉았습니다. 그 순간 산에 숨어 총질을 했던 무장군인들이 총을 겨누며 차를 향하여 쏜살같이 내달리고 차에 타고 있던 몇 명의 사람들이 도망치던 모습을 먼발치에서 목격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습니다.

그 다음 날, 동네로 들어가는 길가에 처박힌 버스에 쓰인 붉은색과 검은색 구호들이 세상을 향하여 외치는 말을 들었습니다. '광주는 무법천지의 세상이다. 폭도들이 활개를 치고 다닌다. 남파된 간첩들이 광주시민들을 들쑤셔서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한다.' 이 두렵고 떨리는 소식을 시위하는 사람들, 불타고 있는 건물 등 다양한 영상과 함께 텔레비전을 통해 볼 수 있었습니다. '자동차가 다니지 않아서 광주에서부터 집까지 걸어왔다'는 동네 아저씨의 말은 광주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말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이 어찌되려고 이런 일이 일어난다냐? 죽은 사람이 몇 명인지, 다친 사람이 몇 명인지 알 수 없다더라. 지금 광주는 난리가 아니라더라' 부모님과 동네 어른들의 입단속에 숨죽였던 일들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고향마을로 들어서는 도로변에는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돌 판이 그 날의 참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사랑하는 부모·자식, 형제·자매, 친구들이 불의한 국가권력에 의하여 씻을 수 없는 치욕과 죽임을 당하고도 억울함을 풀지 못한 체 한을 품고 지나온 세월이 38년이나 된 오늘, 그 비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고도 뻔뻔하게 모르쇠로 일관하며 국가를 위하고 국민을 위한 일이었다고 회고록까지 내는 파렴치한, 입에 담기에도 두려운 만행을 저질러 놓고도 여전히 거짓말로 일관하고 있는 세력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허무맹랑한 근거와 논리로 매도하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자들을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불의와 거짓에 저항하는 백성을 총칼로 죽이고 난도질 한 것은 그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진실을 반드시 밝혀야 합니다. 1980년 5월 광주의 진실을 부정하고 덮으려는 세력들의 진상이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 중심에 섰던 신군부세력들의 만행이 온 천하에 공개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죄악을 반드시 단죄해야 하고 엄중히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의와 민주와 평화를 외치다 총칼에 스러져간 5월 영령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과 상처가 치유되고 명예가 회복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의 제단에 피를 뿌리며 스러져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분들이 꿈꾸었던 정의로운 세상, 참된 민주주의, 민족의 평화와 통일은 우리들에게 주어진 책무입니다. 4·27남북정상회담으로 이 땅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좋은 결실을 기대하며 기도합니다.

불의와 거짓의 권력에 대항하여 분연히 생명을 바친 5월 영령들의 제단에 오월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을 바칩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데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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