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병원에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버지가 2년 반을 우리 곁에 있다 돌아가신 지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어머니가 췌장암 말기로 6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다.

그동안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경우 병을 받아들여 당신의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들도 곧 있을 아버지의 부재에 대해서 마음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와 우리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가 계속 곁에 있을 것을 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부재에 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어머니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그런 결과가 나왔다. 슬픔 속에 어머니는 전남대 병원과 호스피스 병동을 오가다 6개월 후에 돌아가셨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우리가 사이좋게 모여 웃고 떠들며 노는 것을 좋아했다. 아버지 투병 기간 동안 우리는 더 자주 모였고 멀리 산다고 자주 못 왔던 시누이들은 더 자주 왔다. 아버지는 그동안 계획만 세웠던 선산도 정리했다.

아버지는 투병 기간 동안 내내 자식들에게 당당했다. 물론 그동안 의료보험 체계가 많이 개선되어 암환자에 대한 치료비가 많이 줄어든 것도 큰 도움이 되었지만 아버지는 당신의 치료비도 자식들에게 물리지 않았고 하물며 어머니에 대해서도 따로 준비를 해놓아 온전한 슬픔과 그리움만 자식들 몫으로 남겨 놓았다.

올 초 인터넷 무등일보(2018.1.8)에 해남군이 군 전체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인구를 위해서 촘촘하게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지원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복지서비스의 지원에 노력하겠다는 기사를 읽었다. 열악한 상황 속에서 가정을 지키며 자녀 교육에 헌신했지만 자녀들 앞에 당당할 수 없는 많은 아버지 어머니들에게는 반갑고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 물리적인 노력들과 함께 우리가 노인 복지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우선 재고해야 할 일이 있을 것 같다.

해남 YMCA에서 열리는 『인문 운동가 이남곡 선생과 함께하는 논어 다시 읽기 프로젝트(project) "비움과 채움"』이라는 강좌에서 들은 문구를 인용한다. "자유가 효를 물으니 공자 말하기를, "요즈음의 효는 잘 공양하는 것을 말하는 것 같은데, 개와 말도 돌보지 않는가? 존경하지 않으면 무엇이 다르겠는가?"(논어 제2편) (子游 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不敬, 何以別乎?)" 남곡 선생은 여기서 말하는 존경이 형식화되고 제도화된 의무적인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설명을 덧붙였는데 인간으로서의 당당함의 회복, 즉 자존감을 회복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한편 자존감이란 말은 이번 지방선거에도 어울리는 말 같다. 계속된 부정하고 부패로 인한 구속으로 생긴 계속된 군수 공석으로 생긴 창피함에서 자존감을 회복할 기회가 바로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유권자의 한 명인 내 표가 지금 전국에 불고 있는 이 거센 바람 속에서도 현명한 판단으로 정의로울 군의원과 도의원을 청렴할 군수를 뽑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한 표가 당리당략하지 않고 군민을 섬길 수 있는 사람들을 뽑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내 한 표가 모두가 긴병에도 효자 될 수 있는 정치를 할 사람을 찾아가기를 바란다.

햇볕이 잘 드는 거실 한편에서 널려있는 남편이 끊어온 고사리가 미세먼지 때문에 창을 열어놓지 못했어도 제대로 말라가는 것 같다. 어머니 첫 제사상에 이 햇고사리 나물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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