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변호사)

 
 

'차.(茶.)/향기로운 잎, 여린 싹.(香葉, 嫩芽.)/시인들이 사모하고, 스님들이 사랑하네.(慕詩客, 愛僧家.)'(원진(元稹))

중기 당나라 시절 육우(陸羽)와 《다경(茶經)》의 출현은 차의 역사뿐 아니라 중국 문화사의 일대 사건이다. 그 전까지 차는 단지 병을 치료하거나 갈증 해소 음료였다. 육우 이후 차 마시기는 거의 종교적이거나 예술적 행위로 승화되었다. 종교의 측면에서 보면 찻잎을 따고, 만들고, 즐기는 과정은 참선과 같이 훌륭하면서도 더 나아가 즐거운 망아(忘我)의 경지에 이르는 일종의 수련이다. 예술의 측면에서 보면 차를 마시고 품평하는 과정은 심미(審美)와 같이 세속을 벗어나 미묘하기 그지없는 경계에 드는 것과 같았다.(『동아시아 미의 문화사』)

일본에는 센노리큐(千利休)가 있다. 다도를 하는 이라면 누구나 기억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와 리큐선사의 나팔꽃 이야기다. 히데요시가 리큐 집의 나팔꽃이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됐다. "자네 집의 나팔꽃이 아름답다면서…", "내일 아침 일찍 저희 집에 오십시오. 해뜨기 전 나팔꽃이라야만 합니다" 다음 날 아침, 히데요시가 리큐의 집을 찾았을 때, 정원에는 한 송이의 나팔꽃도 보이지 않았다. 황당했다. 리큐가 히데요시를 다실로 안내했다. 다실에 들어서자 작은 꽃병에 꽂힌 나팔꽃 한 송이가 환희 눈에 들어왔다. 리큐 특유의 미학이었다. 아침 일찍 리큐는 히데요시에게 보여 줄 나팔꽃 한 송이만 남겨 다실로 끌어오고, 나머지는 모두 없애버렸다. 히데요시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뱉었다. "과연 리큐답다"

리큐는 일본 전국시대의 무사들에게 차를 통한 구도의 길을 열어주었다. 좁고, 낮고, 검소한 다다미가 깔린 다실에서 차를 우려내고, 마음을 내려놓고, 본래의 자아와 마주하는 구도의 길을 리큐는 설계했다. 이 경지가 바로 '와비' 곧 '조용하게 맑고 가라앉은 정조'를 즐기는 것이다.

리큐는 엄숙하고 따뜻하며 동시에 속된 데가 없이 깔끔한 차를 '와비차(わび茶)'라고 했다. 다도에는 '이치고이치에(いちご いちえ, 一期一会)'라는 말이 있다. "모든 만남은 일생에 딱 한 번 있으니,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라"는 뜻이다. 두 번 다시 못 만난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차를 대접하는 마음, 보다 좁은 공간에서 차를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리큐는 다실 문을 겸손히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도록 낮게 만들고, 다다미 한 장 반 정도의 작은 방을 구상했다. (김응교, 『일본적 마음』)

몇 년 전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교토에 갈 일이 있었다. 리큐의 차 문화체험을 신청했다. 리큐의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는 어느 명인을 찾았다. 교토 시내의 빌딩 안에 리큐의 다실이 그대로 재현돼 있었다. 다실의 옆쪽의 좁고, 낮은 문을 먼저 방 안쪽에다 양손을 짚고 무릎 채로 한 번에 훌쩍 뛰어넘어 들어가야 하는 것부터가 특별했던 기억이 새롭다.

일지암의 초의선사는 "다도를 설명하기 위해서 『동다송(東茶頌)』을 썼다. 조주풍(趙州風)의 다도가 없어져 버려 알지 못하므로 『다신전(茶神傳)』을 쓴다"고 했다. 우리도 우리의 차 문화를 갖게 됐다. 선사의 다도는 이랬다. "차는 물의 마음과 정신이요, 물은 차의 몸이니 참 된물(眞水)이 아니면 다신(茶身)을 나타낼 수 없고, 참된 차(眞茶)가 아니면 수체(水體)를 나타낼 수 없다"

선사의 다맥을 잇고 있는 여연스님이 정리했다. "우리의 다도사상은 '정(正)'과 '중(中)'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과 '중'은 불·유·선 등 우리 선조들의 정신적 사상사적 철학을 모두 포괄하고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다"

이맘때면 고향의 햇차가 나올 때다. 새삼 해남 차의 도리를 묻는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