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기운이 가득하다. 묵은 가지에서 새순을 내미는 고목들이 경이롭다. 거추장스러운 것을 털어내고 새것으로 채우는 나무들이 어느새 봄을 완성했다.

공원의 고목을 마주할 때면 한 선배 사진가가 떠오른다. 나무를 사람처럼 대한 강봉규 선생이다. 몇 년전 그의 강연을 듣고 그가 펴낸 사진집을 받았다. 그의 사진집에서 나는 고향과 자연 그리고 나무와 사람들 얘기를 만났다. 지금도 책장 속 그의 사진집에 가끔 손이 간다.

'사람처럼 나무도 생각하고 꿈꾼다.' '나무는 사람처럼 자기만의 목소리와 풍채를 지니고 있다.' 화순이 고향인 그가 나무를 의인화한 표현이다. 평생 광주에서 사진기자 사진가 예술문화운동가로 활동해온 그는 담양 가는 길목에 명지미술관을 짓고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50여 년 동안 한국의 전통과 문화 자연을 사진에 담아왔다. 농어촌과 산간지역을 두루 다니며 사람들의 삶과 풍습 등을 쉬지 않고 기록했다. 지난 2000년부터 그가 집중적으로 작업해 온 주제는 '인간과 나무'였다. 그가 오랫동안 사진기자로 일하며 진솔하게 담아왔던 민중의 삶과 표정처럼, 그의 작품 속에 있는 나무들은 거친 비바람에도 제자리를 지키며 꿋꿋이 살아왔던 이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의 사진집 영향을 받아 나무를 찾아 사진에 담으면서 2년 전 나는 우리지역에 있는 많은 나무들을 만났다. 미처 완결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 작업이었지만 각각의 사연을 품고 있는 나무에는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스며있음을 알았다. 오래된 나무에서 '천년 후의 나를 본다'는 강봉규 선생의 말이 와닿았다. 그래서 그의 작품집 '인간과 나무'를 볼 때면 내 마음에도 이미 봄이 왔음을 깨닫는다. 사진교실에서 함께 우리지역의 이야기를 사진에 담는 회원들이 늘어나고 그들의 실력이 향상됨을 느낄 때 그 마음은 배가된다.

지난 주 광주지역 작가모임에서 "그가 연로하셔서 걱정"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얘기가 나왔다. 언제나 나무처럼 새로운 꿈을 꾸고 후배 사진가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그였다. 사람은 세월을 비껴가지 못하지만 그는 '자연이 사람이고 사람이 자연임'을 언제나 작품에서 보여주었다. 천년이나 되는 세월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나무처럼 굳건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찬바람에 모든 것 털어내고 순백의 세상을 단단히 견뎌온 나목(裸木)은 이 봄에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나무가 꾸는 꿈은 무엇일까? 나무가 바라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 가지마다 봄바람을 가득 안고 한없이 수액을 뻗어 올린 공원의 나무들이 올해도 어김없이 새 생명을 피어낸다.

<정지승의 사진교실 535-2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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