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은희(주부)

 
 

작년 여름 베트남의 하노이와 하롱베이를 자유여행으로 짧게 다녀왔다. 베트남하면 호치민, 월남 파병, 빨간 마후라의 가수 김추자, 고엽제 그리고 쌀국수가 떠오른다. 하노이에서 짐을 풀고 첫 목적지는 호치민 묘였다. 호텔에서 불러준 택시를 타고 가는데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는 게 보였다. 그 끝이 보이지 않아 그 날 내로 관람 할 수 있을지 살짝 걱정이 되었지만 한참을 걸어 줄의 맨 뒤에 섰다. 그러나 그 뒤로도 사람들이 계속 왔다. 베트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선글라스를 낀 여행자들이 여기저기 끼어 있었다. 입구가 어딘지 가늠할 수 없는 외국인이었던 나는 좀처럼 줄어드는 것 같지 않은 줄에 서서 기다리면서 두리번거렸다.

참배자들의 줄 밖에서 서성거리는 부채 장수와 언 생수 장수는 관광객을 보면 연신 부채를 펴 보이거나 언 생수병을 들어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참배객들의 줄 밖 차도에서만 서성거리고 줄 안으로 들어와 줄을 끊지 않았다. 그동안 다녀온 라오스, 미얀마 그리고 캄보디아 등에서는 어디를 가든 그 나라 사람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기념품이나 구걸 깡통을 들고 관광객을 보면 달려들었는데 베트남에서는 그렇지 않아 신선했다. 또한 줄 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속에는 일요일 아침 자는 아이들 깨워서 손잡고 나왔는지 아이들도 많다. 엄마에게 안긴 아이에게 장난을 걸어본다. 아이가 배시시 웃는다. 할머니 손을 잡고 있는 아이도 웃는다. 참 구운 아이들이다. 그 옆에 서 있는 아빠는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선글라스를 끼고 두리번거리는 관광객을 쳐다보다 수줍게 고개를 돌린다. 행복한 가족 같다.

건국의 아버지로 베트남인에게 존경받는 호치민은 평생을 베트남 독립을 위해서 살았다. 사망하면 거창한 장례식 대신 소박하게 화장해 달라고 요청한 그를 미라로 만들어 놓고 참배한다고 줄 서는 그들을 보고는 죽고도 편하지 않을 호치민에게 연민이 생겼다. 그러나 베트남 대표 관광지이며 수억 년 동안 반복된 해수면 상승과 침식으로 크고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고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어 있는 하롱베이 관광을 할 때 그 연민이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그 경이롭고 아름다운 하롱베이는 1969개의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며 호치민의 사망 연도가 1969년이라고 설명하는 가이드는 호치민이라는 이름을 말할 때마다 얼굴이 상기되며 웃었다. 실재로 섬이 1969개일지도 모르지만 관광객인 내게는 호치민의 사망 연도를 잊지 않으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을 본 것 같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국민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호치민도 또한 그렇게 존경하고 숭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는 베트남 국민들이 부러웠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의 실체가 하나둘 밝혀지면서 온 국민을 경악케 하던 때였다. 어디서나 그게 얘깃거리였다. 여성회관 '원어민과 함께 하는 영어회화' 수업이 끝나고 대흥사로 점심을 먹으러 가서도 박근혜 국정농단에 대해 서로 열변을 토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 한 분이 이럴 줄 모르고 무능하고 무심한 대통령에게 투표했다며 후회한다고 했다.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선생님도 벌금을 내셔야해요. 책임을 지셔야지요"라고 말을 툭하고 던졌다. 안산시 공무원으로 근무 중인 사촌도 팽목항으로 순환근무를 왔을 때, 똑같은 후회를 했다.

우리는 작년에 이어 또 전직 대통령이 부정과 부패로 구속되는 장면을 지켜봤다. 소박하며 단정한 삶을 사랑해서 더욱 더 사랑받는 남의 나라 영웅과는 반대의 삶을 산 우리나라의 대통령을 지켜보는 마음은 착잡했다. 그들에게 표를 준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고 그 사람들을 찍었느냐고 묻고 싶다.

요즘 길을 나서면 후보자들의 명함을 한두 장은 받게 되는 것을 보니 선거철에 접어들긴 들었나보다. 선거는 선거인과 피선거인이 모두 주체다. 그러니 유권자들도 본격적인 준비를 해야 한다. 내 한 표는 임기 중 공석을 만들지 않을 해남군수를 뽑고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할, 가진 것이 없어도 많이 배우지 못해도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며 농민인 내 남편이 자랑스럽게 농사짓게 할 소중한 표다.

바로 지금, 현명한 유권자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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