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천(향교 북일면 유도회장)

 
 

춘흥은 봄에 느끼는 천초만화의 감흥이다. 하기야 감정의 동물인 인간이 어느 때 어느 곳인들 감흥이 없겠느냐마는 그래도 봄은 사람의 마음을 들쑤셔놓은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대지가 연초록 빛깔로 물들고 분홍색 진달래가 제철을 자랑할 때면 제 아무리 목석 같은 사내도 마음이 왠지 싱숭생숭해진다.

자연적으로 평상시에는 없던 생각이 샘솟는가 하면 때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면서 묘한 감상에 젖곤 한다. 봄이 지니는 특성 때문이다.

감흥이야 사람의 나이 따라 다를 것이다. 청춘남녀라면야 이성을 그리는 마음에 심장이 방망이질을 해대겠지만 나이 지긋한 중년이라면 왠지 조락한 꽃잎에서 인생의 허무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네 인생을 나른한 봄날 잠시 낮잠에 빠져 꾸었던 한바탕 꿈에 빗대어 일장춘몽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황혼기의 노년이라면 또 다른 감흥에 쓸쓸해 할지도 모른다. 50~60년 전 넘기 힘들었던 보릿고개를 떠올리면서 그 서럽도록 가난했던 때의 춘궁기를 연상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시인 신동엽(1930-1969) 같은 이는 "배는 고파서 연인 없는 봄(3월) 해마다 봄이 오면 피어나는 가난(4월)"이라고 읊었다.

자연히 봄의 정취를 노래한 문학 작품도 많다. 대체로 새나 꽃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이를테면 조선시대의 대표적 문학 장르라 할 수 있는 시조를 보면 도화나 이화, 매화, 꾀꼬리, 자규, 제비, 뻐꾸기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낙양 삼월시에 곳곳마다 화류로다 만성춘광이 태평을 그렸는데 어즈버 당우세계를 다시 본 듯 하여라(이정보 1693-1766)

그렇다고 봄을 상징하는 것에 화조만 있는 것은 아니다. 봄 바람이나 봄비 또한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비록 생동감이나 화창함은 덜 할지라도 봄기운을 느끼기에 부족하지 않다.

春雨細不適(춘우세부적)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듯 마는 듯
夜中微有聲(야중미유성)
밤중에 들려오는 실날같은 소리
雪盡南溪漲(설진남계창)
눈녹은 남쪽 개울 물 불어났으려니
草茅多小生(초모다소생)
그동안 새싹은 얼마나 자랐는가.

鄭夢周(정몽주 1337-1392)의 춘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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