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주년 맞는 시골의 명품 학교

 
 

전교생이 53명인 해남군 현산면의 작은 농어촌 학교, 현산초등학교가 올해 5월 학교 문을 연지 100주년을 맞는다. 해남에서는 해남동초에 이어 두 번째로 100주년을 맞이하는 곳으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데 100주년을 앞두고 현산초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들여다본다.

달마산 오색 병풍 구비쳐 놓고/비조봉 나는 새는 즐겨 춤춘다/유구히 이어받은 찬란한 전통/받들어 빛내보자 우리 현산교(현산교 교가)

일제강점기인 1918년 5월 17일 북평면에 달산공립보통학교로 문을 연 현산초등학교는 1920년 현재의 현산면 일평리로 학교 건물을 이전했다. 이후 1949년 현산국민학교로, 그리고 1996년 지금의 현산초등학교로 이름을 바꿨으며 오는 5월 대망의 100주년을 맞게 된다.

교목은 소나무, 교화는 동백꽃, 교색은 청색이며 현재 유치원 1학급(9명)과 초등 6학급(53명)으로 편성돼있고 교직원은 24명에 달한다. 유치원과 초등 학급까지 7학급이라 일곱 빛깔 무지개활동이라는 이름으로 특색있는 교육에 나서고 있고 그래서 현재 학교 건물 외벽도 일곱빛깔 무지개로 칠해져 있다. 특히 전교생 가운데 40%정도가 다문화학생으로 다채로운 문화는 물론 소통과 배려가 항상 피어나고 있다. 그리고 교직원과 학부모들은 현산 학생들을 꿈과 행복을 가꾸는 사람이 되라는 의미로 현산 꿈행이라 부르고 있다.

작은 농어촌 학교에 사설학원 하나 없는 곳이지만 전교생이 1인 1악기 이상을 연주하는 예술의 학교이고 1만5000권에 달하는 도서관 장서에서 보듯 뛰어난 독서교육을 자랑하며 세계화시대에 발맞춘 영어교육과 텃밭 가꾸기와 다양한 동아리 활동, 다도 예절 등을 통해 바른 인성을 강조하고 있다.

2002년과 2008년 전라남도 학교 평가에서 최우수학교에 선정됐고 2011년~2016년까지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꽃 씨앗학교와 새싹학교로 지정됐으며 2016년에는 독서·토론 우수학교로 선정됐고 지난해에는 학교폭력예방 선도학교 지정과 소프트웨어 희망학교로 선정됐다.

100년을 맞은 학교답게 그동안 수많은 인재를 배출했으며 9일 98회 졸업식까지 합쳐 모두 787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현산초등학교 출신 주요 인사로는 2회 박철수 전 전라남도 초대 도지사, 27회 오영대 전 전라남도 교육감, 27회 윤관 전 대법원장, 32회 윤전 전 서울지방법원 부장판사, 32회 임용 전 석탄공사 국장, 37회 임문호 전 교육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38회 조건국 내과 원장, 38회 윤견 전 특허청 국장, 40회 김형윤 전 안전기획부 경제단장, 41회 박점상 전 송천건설 회장, 43회 유경식 광주 새천년약국 대표, 45회 백양현 전 서울지방검찰청 검사, 48회 이옥균 현산농협조합장, 49회 김용석 법무사, 49회 이양선 전 광주서구청 국장, 52회 이성인 경기도 의정부 부시장, 53회 윤웅걸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55회 김광재 전북지방중소벤처기업청장, 56회 고형권 재정기획부 차관, 61회 김장훈 중앙부처 재정기획 재정부 국장, 61회 최창훈 광주지방법원 부장 판사 등이 있다.

 
 

추억, 행복 깃든 예전 현산 꿈행이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가 1940년대 태평양 전쟁이 있던 때라 공부는 둘째치고 항공연료에 쓴다며 송진을 뜯고, 종이 만드는데 쓴다며 아카시아 나무를 벗기는 등 날마다 강제 근로에 동원됐지. 선생님도 모두 일본 사람이고 학교에서 일본 말만 써야 해서 일본 말 안 쓰다 들키면 뒤로 가서 벌도 서고 했지. 1945년 해방될 때까지 그 때 학교 다녔던 사람들은 다 이렇게 고생을 했어"

27회 졸업생인 윤 관(83) 전 대법원장은 당시 초등학교 시절을 이렇게 회고했다. 윤 관 전 대법원장은 가끔 고향인 해남을 찾는데 모교를 들러 100년 된 소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곤 한다. 

29회 졸업생인 김명선(85) 어르신에게도 초등학교 때 추억은 새롭기만 하다.

"학교 갈 때 굽이굽이 걸어서 40분이 넘게 걸렸는데 마을별로 수십명의 학생이 모여서 한꺼번에 이동했고 이들을 인솔하는 학생을 통학반장이라 했는데 내가 2학년 때 통학반장을 했지. 가나다라를 해방되고 나서 3학년 때부터 배웠으니까, 해방되고 나서 대부분 마을과 학교에서 야학이 열렸고 거기서 학생들이 한글을 배웠지"

1960년대에 학교를 다닌 43회 졸업생인 유경식(69) 현산초 총동문회장은 영화처럼 스쳐지나가는 당시 운동회 모습을 떠올린다.

"나 다닐때만 해도 학생 수가 1000명을 넘었는데 운동회 있는 날이면 학생에 학부모까지 운동장에 모이다 보니 사람들로 꽉 찼고 면민 행사가 되버렸지. 특히 4~6학년 학생 중에 선발을 해서 기마전을 했는데 점수도 제일 많이 주고 제일 인기있는 운동회 종목였지"

48회 졸업생인 김금용(64) 현산초 총동문회 사무처장은 지금의 책가방인 봇짐 얘기부터 꺼낸다. "제일 밑에 베니어판을 깔고 그 위에 책이나 필통을 얹져 보자기로 싸서 X자로 매거나 허리춤에 차고 학교에 다녔는데 필통에서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면 그 소리에 맞춰서 뛰며 학교에 갔지. 그 때는 미국에서 원조로 받은 우유가루나 강냉이 빵이 지금으로 말하면 급식으로 나왔는데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이지"

지금 학생들에게는 영화같은 얘기지만 우리의 할아버지 멀게는 증조할아버지의 초등학교 시절 추억이다.

현산초등학교는 작은 농촌학교로 다문화와 조손가정 등 취약계층이 전교생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주변에 교육·문화 기관도 없다. 그러나 지금의 농어촌 명품학교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당당한 주역으로 세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교육환경과 콘텐츠를 미래지향적으로 디자인하고 학교만의 특색있는 교육활동을 학생들에게 심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규모 특색활동으로 꿈과 행복을

특히 일곱빚깔 무지개활동은 한 팀에 소속된 유치원부터 6학년까지 7명의 학생이 어우러져 일곱가지 재능 갖기 활동을 하는 것을 말한다.

매주 월요일 방과후 시간을 활용해 체육놀이 활동, 악기활동, 컴퓨터활동, 독서활동, 바둑활동, 공연활동 등을 학생 주도로 운영하고 있다.

또 텃밭 가꾸기와 학생 꿈 발표하기, 우리 고장 문화유산 익히기 활동, 영어 역할극 동아리 활동, 차 마시기 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운영해 학생들의 꿈과 행복을 함께 가꿔나가고 있다.

1인 1악기를 넘어 1인 2학기, 3악기가가 가능한 예술 씨앗들이 많다보니 지난 2014년에는KBS '다큐공감'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학교와 학교 아이들의 모습을 조명하기도 했다.

학교 교실 입구에는 한 그루의 소나무가 의젓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1920년, 학교 건물이 이곳으로 옮겨질 때 심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고 수령은 100~120년으로 추정되는데 높이가 23m, 둘레가 1m로 그 모양과 기세가 남달라 지난해 12월 해남군이 보호수로 새로 지정했다.

동문들이 학교를 방문할 때마다 이 곳에서 사진을 찍는 등 학교의 상징물이다. 양명희 교장은 "현산초가 교장 첫 부임지로 쭉 생활을 하다보니 현산의 현이 고을 현(縣)이 아니라 어질 현(賢)인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이 다 좋고 어질다. 이렇게 좋은 환경과 학교에서 생활하며 100주년을 맞게 돼 설레고 한편으로 뿌듯한데 앞으로 더 자랑스럽고 모두가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오는 3월부터 3남매가 현산초를 함께 다니게 되는 박이천, 박아현, 박정현 남매는 학교 가는 것이 즐겁기만 하다고 한다. 맏이인 박이천(13) 군은 "친구들하고 마음껏 뛰놀고 영어와 밴드, 악기 등 여러 가지를 함께 배울 수 있어서 좋다"며 "앞으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5월 12일 100주년, 면민 축제로

현산초등학교와 총동문회는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오는 5월 12일 토요일 100주년 기념행사를 열 계획이다. 벌써 지역주민 두명이 소 2마리를 내놓겠다고 약속해 기념행사와 초청가수 공연, 그리고 각 가족들을 촬영해 사진첩으로 만들어 주는 이벤트 등과 함께 흥겨운 지역축제 한마당이 펼쳐질 예정이다. 또 100주년을 기념해 기념탑과 시계탑 건립, 100년사를 정리한 책자발간 등도 계획하고 있다.

윤 관 전 대법원장은 "우리때는 학생 수가 1000명을 넘었는데 지금은 50여명 밖에 안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며 "더 좋은 학교로 발전해서 학생 수가 늘어나길 바라며 현산초 학생들이 건강하게 잘 자라서 나라의 큰 일꾼이 돼 새로운 100년의 역사를 개척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경식 총동문회 회장은 "시골 학교지만 교육열도 높고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곳이다"며 "특색있고 혁신적인 학교를 만들어가고 나아가 교직원과 학부모, 동문, 지역 주민들과 논의하고 토론해서 학생들이 다시 찾는 학교, 꿈과 희망 그리고 행복이 계속되는 학교로 만들어 가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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