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해가 저물어간다. 연말이 되면 지난 1년간을 되돌아보며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흘러갔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특히나 12월은 정신없이 지나간다.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물리적 시간은 1년 12달 똑같지만 이처럼 사람들에게 차이나게 체감된다. 알렉시스 카렐은 '인간, 이 미지의 것(Man, The Unknown)' 이라는 책에서 "아침 일찍 일어나 힘차게 강가를 걷다 보면 물살이 더디게 느껴진다. 반대로 저녁나절에 심신이 피곤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강물은 무척 빠르게 보인다. 강은 언제가 같은 흐름인데 인간이 강물보다 빠르게 걷고 있을 때는 물살이 느려 보이고, 지쳐서 응시할 때는 강물이 빠르게 느껴진다. 그 이유는 바로 '내면의 시간' 때문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시간을 크로노스(khronos)와 카이로스(karios)로 구분했다. 크로노스는 절대적 시간의 신으로 지구가 공전과 자전을 하면서 밤과 낮이 어김없이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을 말한다.

시간은 빈부남녀 노소를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고 아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시간은 축적되지 않고 흘러간다. 시간은 잘못 썼다고 해서 되돌릴 수도 없을 뿐 아니라 돈으로 살 수도 없다. 시간의 최대 난점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인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카이로스는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각자의 특별한 시간을 의미하며 기회의 신이기도 하다. 신화 속 그의 모습은 앞머리는 무성한데, 뒷머리는 머리털이 하나도 없는 대머리이고 양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으며 양손에는 저울과 칼을 들고 있다. 앞머리가 무성한 이유는 사람들로 하여금 내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지만, 나를 발견했을 때는 쉽게 붙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고,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지나가고 나면 다시는 나를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발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해서이다.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앞에 있을 때는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며,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난 한해 우리는 끊임없이 흘러가는 물리적 시간 크로노스 속에서 그저 바쁘게만 살았는지, 무언가 변화를 이루어 내고 삶의 의미를 높이고자 카이로스를 열망하며 살았는지 각자 다르겠지만 시간의 이중성 속에서 갈등하며 한해를 되돌아보면서 후회하기도 한다.

"시계를 살 때 그토록 까다로운 사람이, 약속 시간은 왜 정확히 지키지 못할까? 그는 시간이라는 정보를 얻기 위해 새 시계를 산 것이 아니다. 그저 시계의 그럴듯한 겉모습에 끌려 구입한 것뿐이다"라고 아담스미스가 말했듯이 우리는 지난 한해 값비싼 시계를 탐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등한시 했는지 모른다.

독일 태생 소설가 장 파울은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다. 어리석은 자는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자는 열심히 읽는다. 인생은 단 한 번만 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삶의 책 한 페이지가 또 넘어간다. 올 한해 우리는 그 페이지에 무엇을 쓰고 읽고 책장을 넘기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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