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수렵채취 생활에서 벗어나 농업을 시작하면서 잉여생산과 자본축적이 가능하게 되었다. 곡식이나 가축 물물교환은 교환을 원하는 상대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약 1만 년 전 화폐의 등장은 거래비용이 줄어들고 편리성이 확대되면서 상업이 활성화되고 부(富)가 등장하게 되었다.

화폐는 금, 은, 구리 같은 금속을 거쳐 종이에 가치를 표시해 사용하는 지폐로 형태가 발달되어 왔다. 몇몇 나라에서는 내구성이나 위조방지 목적으로 플라스틱을 재료로 한 지폐도 등장했다. 최근에는 수학적 모델에 기반 해 눈에 보이지 않은 비트코인이라는 전자화폐 까지 등장했다. 화폐가 시장에서 기능하고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는 것은 신뢰와 인정위에 확고히 기반해 있기 때문이다.

화폐는 보편적 전환성 즉 금화나 은화처럼 화폐에 사용된 재료가 등가의 액면가치로 전환을 보장하기 때문이었다. 중세 봉건제도하에서 화폐발행권을 가졌던 영주(seigniorage 시뇨르)들은 저질의 재료를 사용하거나 금속순도를 낮춤으로 제조원가와 액면가의 차이를 이득으로 챙겼기 때문에 화폐를 발행함으로써 얻는 이득을 시뇨리지(seigniorage)라고 부르게 되었다.

둘째, 보편적 신뢰, 절대 권력에 의해서 가치가 보증되기 때문에 종이 조각에 지나지 않지만 국가보증에 의해 화폐로서 기능한다. 세계경제는 무역결제나 상거래시 미국 달러화를 핵심통화 기축(基軸)통화로 사용되고 있다.

1944년 브래튼우즈 협정당시 미국 달러화는 금1온스(28.35g)=35$ 로 달러화의 가치를 보장하는 금태환(金兌換)제도를 통해 달러화 신용과 가치를 인정받아 '넘버1'의 자리에 등극했다. 그러나 1971년 일본이나 독일의 강력한 경제적 도전과 경제력 약화로 미국은 금태환제 포기를 선언했다.

과거에 달러화 지폐는 액면가 만큼의 금과 바꿀 수 있는 가치와 신뢰가 있었으나 이제는 사실상 종이조각에 불과하다.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해서 달러화의 권위를 떠받치면서 '넘버1'의 자리를 지켜내고 있지만 그 자리가 영원할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은 수입이 수출을 훨씬 초과하는 막대한 무역적자와 세수보다 지출이 훨씬 많은 재정적자에도 불구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달러화의 발행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국가재정이 파탄나지 않고 유지되고 있는 셈이다. 불로소득에 가까운 막대한 시뇨리지 효과를 독점하고 있는 '넘버1' 기축통화의 지위를 두고 엔화, 유로화, 마르크화 등의 '넘버2' 들이 그 자리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최근에 '넘버3'의 위치에 있었던 중국 위안화가 '넘버2'들을 너끈히 제압하고 달러화의 독점적 지위에 거센 도전을 하면서 경제적, 군사적 충돌이 심화되고 있다. 사드문제의 본질도 결국은 미국과 중국의 화폐전쟁의 국지전인 셈이다.

냉정한 국제정세 속에서 '넘버1'과 '넘버2' 사이에서 눈치를 보며 줄타기를 해야 하는 우리 처지의 옹색함이 대통령의 중국 국빈방문에서도 묻어났다.

명심보감에 "사람간의 의리는 다 가난한 데서 끊어진다. 세상의 인정은 돈 있는 집으로 쏠린다" 했듯이 나라도 재력이 있고 화폐가치가 있어야 자존심과 국권을 지켜낼 수 있다.

저작권자 © 해남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