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웅(해남군장애인종합복지관장)

 
 

1월을 맞이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다. 새삼스럽지만 2017년 한 해를 돌아보며 정리를 해야 할 것만 같은 시기가 다가오니, 잘 살아왔었는지 살펴보느라 마음 한켠이 후회와 아쉬움으로 무겁기도 하다.

세상은 3차 혁명의 종말과 함께 4차 혁명의 도래를 이야기 하고, 왠지 번쩍 번쩍한 도회지하고나 어울릴 것 같은 4차 혁명은 우리랑은 거리가 먼 담론일 것 같은 편견이 부지불식간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올 한 해를 돌아보다보니 뜻하지 않게 내가 살고 있는 우리 주변에 4차 혁명의 고갱이가 이미 충만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필요 역량으로 '창의능력, 비판능력, 소통능력, 융합능력'이 제시되는데,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대를 이해하고 함께 하는 공감능력이 그 역량의 기반이 된다고들 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역량들의 기반이 되는 공감능력을 나는 내가 몸담고 있는 장애인복지관 장애인활동보조인 선생들을 통해 수시로 경험하고 있다.

우리 복지관에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시는 중증장애인들이 90여분 정도 되시고, 활동보조인 선생님들은 60여분정도 계신다. 활동보조인 선생님들은 활동지원서비스 이용자 개개인의 가정으로 방문하여 신체활동, 가사활동, 이동보조등을 지원하는 일을 현장에서 직접 수행하시는 고마우신 분들이다. 개인적으로 만나 뵙게 되는 장애인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각 개인 역사의 질곡 속에서 다양한 삶의 형태로 존재하시며, 필요로 하는 부분이 각기 상이하다. 활동보조인 선생님들이 인연을 맺게 되는 장애인분들도 매우 다양하며 각기 다른 상처와 어려움들을 지니고 계신다. 장애인으로서 혹은 장애인의 가족으로서 가지고 있는 상처를 읽어주고 공감해주며 어려움의 일부분이라도 해결해 주시려 애쓰시는 분들이라 내가 느끼는 고마움은 매우 크다.

일례로 우리복지관에서 수 해 동안 활동보조인으로 일하고 계시는 선생님이 한 분 계신다. 그 선생님은 본인과 인연을 맺게 된 젊은 장애여성에게 어머니와 같은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시다. 일찍이 어머니의 부재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와 단 둘이서만 생활했던 이 젊은 장애여성에게 의무적으로 제공하게 되는 서비스의 내용 이외에도 여성으로서 준비하고 조심해야 할 일들을 끊임없이 가르치고 그 가정의 넉넉지 않은 살림에 마음 아파 반찬거리를 챙기신다.

필요한 물건들이 있으면 주변에 수소문하여 필요한 살림들을 알뜰살뜰 챙겨주시는 선생님으로 인해, 세상에 방어적이었던 그 장애여성의 아버지나 그 장애여성의 눈빛이 순해지고 신뢰로움이 가득한 것을 보았을 때, 사람의 변화를 만드는 '사람'의 모습을 보았다. 그 선생님이 그 장애여성 가정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지 않았던들,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람의 마음이 움직였을까? 지금도 그 젊은 장애여성은 엄마와도 같은 우리 활동보조선생님과 함께 꽃처럼 활짝 핀 얼굴로 해남 읍내를 다니며 운동도 하고 교회에도 나가고, 복지관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 분 뿐만이 아니다. 부모님도 장애인이라 사회적 경험이 적을 수밖에 없는 장애아동을 이리저리 데리고 다니시면서 부모님이 못해주는 역할까지 손주 돌보듯 해주시는 선생님, 맞벌이하는 부모슬하의 장애아동을 제 손주처럼 돌보시고 아껴주셔 장애아동의 부모님께 '아버지'소리를 들으시는 선생님 등 하나 하나 헤아리기가 힘들 정도다.

일 하나만을 가지고 맺어진 관계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시작은 일로 만났겠으나, 일을 하다보니 사람이 보이고, 사람이 보이니 그 아픔과 어려움과 기쁨을 이해하며 공감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내어져 전달되고, 서로 통하는 마음이 깊은 신뢰관계를 맺어지게 하는 것일 터이다.

생산성이 최고의 가치인 시대가 가고, 공감능력이 요구되어지는 새 시대를 바라보면서, 이 땅끝마을 해남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역량을 이미 자연스레 체현하고 계시는 우리 선생님들을 통해 준비된 우리가 맞이하게 될 새 시대의 모습을 남몰래 그려본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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